Young_Jin_Tech_By_Young_Seok_Choi
Young_Jin_Tech Corp is the Lab of Public & Indivisual Person's WebSite.The WebSite's Targeting & Objecting of inagurating is developing OS(Operating
System) of The South of Korea_it means, Innocent OS_Operating System of the
south of korea. So, I determines developing The OS during the period of the
decades_10 Years After. The 09_Months_21_Day_2032_Years_Lunar_Calendar is
My biological mother's Birth Day_Lunar_Calendar.
After 10_Years Later, If developing The OS, And then I Will & Would Donating Of Profits_
(The Result Of The Developing OS) To
People like of Children_Heart_Disease_Or_Heart_Trouble for Treatment.
So, I Hope That The children Of Heart_Disease_Or_Heart_Trouble is will happy &
Smile With The Their Own Family & Their Own Contry.
Cause, I like & Love Children, The family & The My & Own Country
(The Republic of The Korea_The South Of The Korea) Purely.
The E-Mail Address is_
mariahcys@naver.commariahcys@yj78tech.co.kr
The FAX Number is +82_62_443_5374
영진정보기술
(永眞正寶技述)
YoungJIN_TECH
회사 소개서
영진정보기술은 최초 2007년 07월 가정집에서 개인사업장으로 개업하였습니다.
그 이후 대표자인 최영석 본인이 2012년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광주광역시 다시 귀향한여 2013년 ~ 2022년 간의 작장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가정집에서 개인사업장으로 재창업한 1인 연구 기업입니다.
영진정보기술은 2032년 09월 21일(음력 기준)을 목표 기간으로 잡고, 컴퓨터 운영체제_MS사의 Windows 계열, MAC 계열, UNIX, 리눅스 계열의 운영체제를 제외 한,
2001년도 당시에 가정집에서 일반 KT 전화 회선을 이용하여 인터넷_Internet을 가능하게 했던 통신 에뮬레이터_Ex_
새롬데이터맨 Pro 등의 통신 개념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한 한국형 운영체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는 1인 기업입니다.
영진정보기술의 1인 기업이 왜 한국형 운영체제를 개발하려하는 순수 이유는 거대 소프트웨어 회사_Ex_미국의 MS사 등의 강제 판매_즉 강매에 대한 국가별 정책에 대한
각 국의 소프트웨어 구매에 대한 자율성과 민주성을_판매 및 구매 기준으로 봤을 때_침해 한다고 영진정보기술 대표자가 2007년부터 생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은 기존의 군 전용의 운영체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종 개별 소프트웨어에 대한 호환성 및 융합성 결함 및 부재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에 대한 외면을 받아 왔던게 기정사실 이였습니다. 이 점에 부안 및 부각하여, 영진정보기술은 비록 순수 1인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에서 출발하지는 못하였지만,
근 30년 이상 현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을 해오신 영진정보기술 대표자의 친형님의 조언을 발판삼아서 2022년
07월 28일 재창업하게 되어, 현업에서의 타 개발자와의 순수 경쟁을 통해서,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고 이율배반적이고 비도덕적인 환경을 지양하고서, 연구 및 개발을 계속하려는
취지하에 재창업하게 된 회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 2023년 03월 07일 기준으로, 2032년 09월 21일까지는 근 9년여 기간이 남았습니다. 설령 2032년 09월 21일까지
목표 달성을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고, 혹은 더 안좋은 소식으로 회사 자체가 폐업하더라도, 다시 재개업을 반복할 용의가 있을 만큼, 영진정보기술의 대표자의 마인드는 확고합니다.
2032년 09월 21일(음력 기준)은 영진정보기술 대표자의 친어머니의 생신입니다.
친어머니께서 2032년 생신때까지 살아 계신다는 전제 조건하에, 연구 및 개발 과정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개발에 성공한다면
개발 프로그램의 소스_Source_를 OPEN_Source_개념으로 배포하겠습니다. 그 과정으로 수익이 혹여 발생한다면,
그 수익금의 80%는 전 세계의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기부 하겠습니다.
나머지 20%는 저의 가족들에게 사용하겠습니다.
어머니.
제가(막둥이)_최영석_
이제 어느 덧
백말띠 나이로 45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막둥이 저로 인해서
참,
많이도 울고 웃고
서글피 피는 봄의 꽃처럼
그리고
즐겁게 지는 겨율의 그것(꽃)처럼
우리 어머니
나의 어머니
정말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왜
저같이 못난 막둥이 때문에
그동안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리 셨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받아 왔던
많은 사랑처럼
저 역시
하루 하루
성장하는 멋진 사나이가 되어서
제가 겪고
겪어여만
했었던
수많은 난관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자라나는
새싹처럼
멋지고 그리고 또한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순망한
눈빛의 그것처럼
어머니를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사랑하겠습니다.
어머니.
앞으로도
너무도
마음속으로
울지 마시고
예전처럼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처럼
우리 가족
힘겨웠었던
지난 날은
다 잊고서
앞으로 전진 그리고 또 전진 하면서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건강하게
살아가 주십시오.
어머니만
건강하면
우리 가족은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난관들도
무난히
헤쳐 나갈수 있음에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영원하십시오.
막내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제 자신을 대학원의 교육과 학문을 통해서 제 자신을 계속해서
연마의 과정을 통해서 저의 장점이자 특기인 11년간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해온 부동산 공부를 토대로 해서
남은 저의 인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서 부동산 및 지역개발정책 전공학과 지원하게 됐습니다.
저의 신념은 불법의 櫻_앵梅_매桃_도梨_리 (벚꽃, 매화, 복숭아꽃, 자두꽃) 의 사상
(즉, 모든 사람은 외모도 다르과 성격도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도 다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측면이 누구는 우월하고
누구는 열등하다는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한국SGI 어의구전에 나오는 사상입니다.)
와 자신이 변화하고 변혁하게 되면
자신의 모든 주위 환경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과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덕불고 필유린의 신의입니다.
계속해서 공부해온 부동산 공부를 통해서 그리고 실제로 그동안 그러나
불합격을 계속해서 했지만 정말 마음이 가고 의지의 신념을 갖었기에
지속적인 부동산 공부 + 평소의 정책론의 글 작성들의 과정이 통해서
전남대학교 그리고 전남/광주의 지역 경제 발전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제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꿈과 희망을 갖고서 매사의 생활에 긍정의 사고 방식과 또한 그것에
그치지 않고 옳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주위의 이웃 그리고 대한민국,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저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여
대한민국인 그리고 전 셰계인의 생명의 용틀림을 위해서 목숨에 버금가는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의 생명력으로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 하여
반드시 석사 학위를 취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영석 드림.
서식3
정책 아이디어 제안서식
※ 아래의 사항을 참고하여 자유롭게 기술(글자크기 12point)
※ 아래 서식을 준수 바라며 미준수시 심사제외(5페이지 이내로 작성)
접수번호
( ) ※ 접수번호 기재하지 않음
분 야
□ 문화‧관광‧예술분야 □ 경제‧산업분야 보건‧복지분야
제 안 명
- 광주광역시 2호선 연계 개별 시내버스 정류장 신규 화장실(남/녀) 설치
개 요
(제안요지)
- 현재 광주광역시 개별 시내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화장실은 개별 행정구청 및 주민센터 인근 구역 외에는 없는 상태이다.
제안배경
- 현 시점 기준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노인 세대와 중간세대들의
건강 상태도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을 하는
시민들도 역시 반려동물과 함께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할 경우가
시민 그리고 반려동물도 허다하다.
이렇게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 할 경우에 정류장 화장실의 이용을 극대화하고
버스 정류장 화장실 관리 인원의 기존 버스 정류장 관리 직원들과 더불어
추가적인 신규 일자리 창출과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 개선의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제안내용
(개선방향)
[1-2]
- 2021년 광주광역시 시내버스 기준 전체 정류장수는 현재 2379개 이다.
(근거: 인터넷 구글 검색 기준)
2021년 기준 향후 10년, 20년, 30년, 40년 이후 등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경과할수록 한국인의 노령화는 뉴스 매체 등에서 알려진 대로 기하급수적
으로 초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기초적인 이동 수단인 자차(자가용 등) 와 대중교통의 이용 비율도
후자인 대중교통으로 기울 것으로 사료된다.
그 근거로는 점차 사회의 구성원과 사회의 트렌드가 앞으로 인터넷 매체의
지속적인 발달로 인해서 사회 구성원의 개인 소유의 확장 개념보다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공유 사회서비스의 확장
개념이 널리 퍼질것으로 사료된다.
그 근거로는 직종별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소득 격차로 인한 사회서비스의 공유 이용에 대한 인식의 전환,
그리고 개별 국가의 사회 시스템의 동질화,
즉 사회서비스에 대한 국가적 및 개별 국가의 국내적인 서비스의 경계가 허물어 질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21 세기 초반까지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 사회 시스템이 지배적 이였다면
21세기 중반 이후로는 점차적으로 개인의 사익 추구보다는 대다수의 모든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누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사회 서비스는 공유화가 진행될 것으로 감히 예측한다.
제안내용
(개선방향)
[2-2]
- 구체적인 시행 방안
1. 광주 시내버스 전체 정류장(2379개)을 동시 다발적으로 설치는 불가능
하다. 그러나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 약칭: 공중화장실법 )에서
제4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편익 증진,
위생수준 향상 및 안전한 사용 환경 조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공중이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등의 설치ㆍ지정 및 관리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개정 2021. 7. 20.> 의 법의 기준에 근거하여
향후 15년 간의 총 3단계 (예를 든다면, 현재 시공 중인 광주 지하철
2호선 단계별 기간 및 구간 공사 시행처럼) 의 기간 설정을 둔다.
2. 1단계 (기간: 2025년 ~ 2030년)
: 전체 정류장 2379개 정류장 중에서 노인 및 여성 그리고 유아 인구가
특히나 다른 행정동에 비해서 밀집해 있는 행정동의 수 파악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실태조사의 결과 표본치를 바탕으로 하여
1단계 선 공사가 이루어지기 전 해당 행정동 주민들의 버스정류장
신규 화장실 설치 건에 대한 찬/반 오프라인 및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다. 그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찬성률이 주민수의 2/3을
넘었을 경우에 공사 개시 전 해당 구청에서는 관련 건축/시공/기타
하자 유지 보수 업체 등과의 선 시공 관련 계약을 진행한다.
전체 전류장의 20% ~ 30% 미만의 수에 해당하는 신규 화장실
설치를 마무리 한다. 설치에 대한 공사가 준공 완료된 이후에는
설치된 화장실을 이용하는 주민들에 대한 향후 이용의 대한
만족도 조사를 오프라인/온라인 형태로 진행한다.
이유는 2단계 공사 진행에 대한 사전 근거 자료를 만들기 위함이다.
2단계 (기간: 2031년 ~ 2036년)
: 5년간의 1단계 공사 (20% ~ 30%)가 마무리 되면 1단계 공사 진행의
목표인 노인/여성/유아 밀집 행정동의 신규 화장실 설치를 통한
해당 행정동 시민들의 만족도 표본 조사를 토대로 하여 2단계 공사인
외국인 이주 노동자 밀집 행정동, 자가 비율이 낮은 원룸 형태의 거주민
이 밀집해 있는 행정동, 마지막으로 광주광역시 외곽 지역의 거주민이
밀집해 있는 행정동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이유로는 광주 지하철 2호선
노선 구간이 광주광역시 외곽의 원의 형태로 구간 설정되어 있고
2호선 지하철 정류장을 토대로 하여 버스 환승 쳬계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체 정류장수의 50% ~ 60% 공사 완공을 목표를 진행한다.
3단계 (기간: 2037년 ~ 2042년)
: 1단계 공사 준공 완료와 마찬가지로 2단계 공사 준공 완료 후에는
해당 법정동의 주민들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오프라인/온라인으로
조사한다. 3단계 공사 구간의 주대상으로서는 상급 종합병원/요양원/
요양병원/준공업지역 (평동산단, 하남산단, 진곡산단 등)/자전거도로
에 근접한 행정동에 대한 공사를 진행한다. 이유로는 앞으로 20년 후
에는 지금의 30대 이후의 세대(현재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세대)가
60대 이후의 나이에 근접하게 된다. 그 이후의 세대들이 겪게 될
근접한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개인주의 모습에 벗어난 공동 생활의
주거 생활의 모습과 공공 공유의 형태로서 생활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주 타겟층이 될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기대효과
- 기술적 측면
: 기존의 버스정류장을 연상하게 되면 단순히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순간적인 잠시 머물러 있는 장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바로 들게 된다.
하지만 버스정류장 화장실을 설치하게 되면 야간 시간대(매일 자정 ~
05시 까지)에는 화장실 출입이 인가된 사용자 (화장실 관리자 등)외에는
출입이 안되겠금 하는 출입 운영 시스템과 연동되어 각종 출입 시스템
을 개발하는 벤처 기업들의 상승 경쟁 쳬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 사회적 측면
: 공공화장실을 연상하게 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청결의 이미지 보다는
더럽다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는 현 실정이다. 이런 공공화장실의 이미지
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피하는 행정 정책 보다는 부딪혀서
이미지 제고 개선을 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을 마련하는 행정청의 인식
개선이 급선무이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 장소가 아닌 대다수의 시민
들이 짧은 시간이라도 머물러 갈수 있는 편안하고 언제든지 다시 찾고
싶다는 변화되는 각인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버스
정류장 주변에 있는 (광산구의 예를 든다면) 간이 공공 자율 도서 공간
이 있다. 이 공공 자율 도서 공간을 현재는 활성화가 안되어 있는 실정
이지만 버스정류장/화장실/간이 공공 자율 도서 공간의 3박자를 이루워
내어서 집안에만 거주하여 이웃과의 교류대가 차단되어 (개인의 현 처지
등) 각종 심리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사회와의 거리가 괴리되어 가는
실태도 개선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시스템이 잘 조화가 된다면 언제든지
즐겁게 하루 하루를 이웃과의 교류를 통해서 버스정류장의 이미지가
사랑방의 장소가 될 수 있다.
- 경제적 측면
: 현재 광주 시내버스 정류장을 현장 관리하는 정/부 형태로 현장 관리자
가 해당 행정동에 거주하는 주민 위주로 공공일자리가 되어 있다.
이 공공일자리 형태에서 좀 더 나아가서 버스 정류장과 화장실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현장에서 상주하는 인원을 충원하는
일자리 창출 효과도 부각될수 있다. 단순히 현장에 상주하는 인원 충원
이 아닌 해당 버스정류장과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민들과의 교류감을
형성하는 바람개비의 역할, 즉 어린이에게 있어서는 할아버지/할머니의
가정적인 역할, 외국인에게는 광주에 대한 각종 생활 안내등의 안내자
역할, 여성들에게는 각 종 노출되어 있는 위험에 대한 방패자의 역할
등을 기대할 수 있다.
- 산업적 측면
: 버스정류장 화장실 설치는 단순히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급한 개인의 생리적인 해소를 위함이 아니다. 단순히 화장실을 급하다면
정류장 근처의 카페나 공공기관까지 걸어가서 급한 용무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위 화장실 설치의 취지는 단순히 급한 용무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로 광주 시민의 공동체 대한 공유에 대한 인식 제고
그리고 공유서비스의 이용에 대한 향상된 단결된 시민의식 제고를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음이다.
주룩주룩 비가
어느 일요일 오후 주룩주룩 내리는 비
하늘의 새하얀 빛의 눈물인 양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비인 양
주룩주룩 내린다.
20대 30대를 보내고 그리고 40대를 맞이하며
어느덧 하나둘씩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다.
시간의 흐름에 내가 과연 그동안 내가 원했던 것을 이루어냈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나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대답은 글쎄다.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던 그동안을 생각하며 지금 이 글을 쓴다.
드넓히 크게 이루어낸 건 없더라도
마음의 성장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단순한 미지의 두려움은 없다.
때론 혼자라는 생각의 깊이에.
최영석 시집 나의 삶
최영석 시집
나의 삶
최영석
광주제일고
명지대
2013년도에 개인 홈페이지
https://yj78tech.co.kr
를 만들어서 평소에 쌓여있던 글을 업로드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실천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 홈페이지에 등록된 글이 전부가 아니고 아직 업로드를 못한 글이 많이 있다.
직장 생활과 병행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생활해왔던 초중고 대학 생활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 등을 다소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의 삶
나의 삶
최영석
차례
6 · 내일
9 · 창밖의 새
13 · 빛의 그날
15 · 유림
19 · 어머니의 노래
23 · 인연
29 · 나와 너 그리고 너와 우리
34 · 시간의 향연
37 · 홀로 섬의 지각
40 · New For You In The Sky
44 · 2017년 아버지 생신
46 · 생일의 의미 For Seungwon
49 · This I Love
51 · 형과 조카
54 · 생일 for Hong Joon
56 · 가을 속으로
59 · 밝은 홍준의 모습을 그리며
61 · 겨울
64 · 중제실에서의 마지막 승리
66 · Rright Here Waiting For You
69 · To Love You More
72 · 삼겹이, 그대 이름은
74 · 주룩주룩 비가
78 · 2주년 홍준, 축하하며
80 · 2주년 승원, 기념하며
82 · 승원이 집들이
84 · 돌담 깊이 꽃 몽우리 피어나네
87 ·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91 · 꽃과 나무 그리고 그대의 사랑
세월의 지나감에 이미 지나가 버린
어제와 작금에 진행 중인 오늘
그리고
다가오는 내일의 산뜻한 기시감.
어쩌다 보니 지금 내 나이의 시간대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의 일상의 공유 속에서
함께 동고의 시간을 보내며 함께 울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면서 다가오는 내일의 명암의 시간을 째깍째깍 재어보면서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최선의 길과 최고의 성과를 향해서
한걸음 거북이의 지쳐가지 않는 끈질김과 지속성을 갖고서 비록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지나가버린 시간보다 짧더라도
항상 긍정의 믿음과 미래의 밝은 희망을 기대하며
연대와 주위의 사람들과의 동지 의식을 갖고서 내일을 향해.
창밖의 새
언제부터인가 새삼스레 알게 되는 자연의 순리 속에
인간이 적응해 가는 이치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이 있으니 과가 있다는 불법에서의 섭리처럼 제 아무리 발버둥치고
자신 안의 능력 밖의 결과를 이루어 내려고 최고 최선의 노력을 하더라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것이 있다면 아니 다시 느껴서 뼈저리게 깨우쳐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연속에 비쳐지는 나의 모습보다는 그저 한없이 사라져가는
나 자신의 모습에 어느샌가 내 자신이 놀라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세상은 한없이 아무런 반작용이나 그저 그렇게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나의 존재도 모른 채.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줄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세상의 투영 속에 비쳐진 그들만의 리그처럼 알 수 없는 게임의 그것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처럼.
어머니의 노래
대지의 자연 속 미궁 미로에
빠져버린 듯한 기분의 시절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 순간마다 손을 뻗어
구원의 길을 인도하고 그저 하기 싫어질 때마다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용기의 미덕을 가르쳐준 대지의 어머니
왠지 모를 미지의 매 순간 매 순간
숨바꼭질하듯
마냥 내 앞에 나타나
내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 대지의 어머니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그런 연유에
평생 잊고 싶은 기억들과 항상 간직하고픈
기억들 속 나의 우리의 대지의 어머니
항상 나의 우리의 나무의 그 자리처럼
그곳에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지의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 듯 싶다
그저 아무것도 자세히 모를지언정 설혹 그것이
미숙의 반향일지언정
나의 우리의 대지의 어머니의
존재 그 자체로서 의미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대지의 자연 속 어머니 그 자체로
인연
인연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작은 그러나
끈질긴 생명의 용틀림의 매 순간마다 시작되는 작은 인연들
그리고
조금씩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의 아련함 다가오는
가을에 대한 갈망과 함께 조금씩 물러가는 여름의 소소한 무더위처럼
계절의 변화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일까
인연이란 것이
오늘도 지나간
어제도 그리고 다가올 내일도
나에겐 우리에겐 작은 무한한 두려움과 떨어지는 낙엽의 향기처럼
혼자 정처없이 걸어가는 마치 미결의 약속을 향해 서서히 멀어져가는 것일까 인연이란 그런 것일까
만감의 생각의 교차함에도 그저 생각나는 그렇게 무한히 생각되는
마치 멀리 떨어진 거리의 100m 단주 거리의 뜀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오르는 옛 가련한 사람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리고 비오는 거리에 하늘의 메아리처럼 내가 네가 우리가
필요하다는 단 한마디가 나에겐 너에겐 우리에겐
필요함을 잘 알기에 우리의 인연이란 그런 것일까
혼자서 되뇌어보는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음을
함께 있어도 가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어렵던 시절 지켜줄 수 없었던
나의 잘못과 능력 없음을 잘 알기에 나의 어리석음을
잘 알기에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힘겨워하는 연인들의 그것처럼
인연이란 참 연속되는 그리고 계속되는 마냥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처럼
언젠가는 이루어질 소망처럼 만나게 되리라 그대를
나와 너 그리고 너와 우리
너에 대한 나에 대한 수많은 오해
많고 많던 비아냥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되돌아보면 기억에 매 매듭 매듭마다
그저 그 순간이고픈 잔잔한 그리고 애절했던 기억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의 가난했던
그리고 순수했던 또한 그렇게라도 그저 갖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그윽한 미련들
하지만 언젠가 그때쯤에 되돌아 봤을 땐
그렇게도 너무나도 미숙했고 어리석었던 나와 너
그리고 너와 우리 애써 놔주려고 서로가 노력하지 못했던 그렇게라도 했음에 아쉬웠던 너와 나
왜 그렇게도 그때는 방법을 몰랐을까
시간이 해결해줄 소극적인 방법에 그저 무릎을 꿇어야 했던 어리숙했던 나와 너
그렇게도 함께 하고픈 마음도 이리저리 저 멀리한 채로 지금의 너와 내가 이렇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마치 너인 것처럼 마치 우리인 것처럼
시간의 경적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흠칫 놀랄 그 미래의
순간이 올 때쯤에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 순간이
올 때쯤에 내 생의 그때에
너와 내가 함께 하기를 그렇게 함께 하기를 어느 가을밤에
시간의 향연
마침 지나가던 그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간의 향연 속 그때의 시간 속
사람들 왜 그렇게도 주저 없이 말했던 걸까
그때의 나란 존재는 무의미한 넋두리를 밖으로 마냥 표출한 채로
그저 그것이 나였으면 하는 자아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시간의 굴레 속에 빠진 채 지나쳐버린 나의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을 이제서야 만남의 기쁨으로 이루어졌지만
허전한 기분과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이곳 한국에서는 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때 생각의 미로에 빠지는 반복의 생활은 이제 종지부를 찍고 싶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마지막 그 길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고 싶다 나의 길을 향해
홀로 섬의 지각
나 홀로 어디론가 떠나가고픈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이때 나의 옆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조금은 나의 이기적 생각의 발로를 저만치 멀리하고서 때로는
조금의 여유를 가져보면서 나의 길과 가족의 길을 걸어간다
시간과의 촌각을 다투는 지금의 현실에 싫증 나기도 절망의
기로의 순간이 닥치기도 하지만 이 순간이 저 순간이 항상 반복되지 않았던가
시무룩해 할 필요도 없고 주눅들 필요도 없으니 한 단계 한 단계 밟고
이겨나가는 게 순리의 정점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자연의 이치를 믿어보고서
내일을 기약한다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내고서
2016년을 생각하며 못했었던 일들 하기 싫어 미뤘던 일들
그리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기원을 해보는 올해가 되어보자
자꾸만 빨리 흘러가는 시간 속에 저만치 가버린 옛 시간 속에
조금씩 나약함의 미로에 빠지고픈 생각과 상념에 힘들었던 기억들은 하나둘씩 잊어버리고
잊혀지지 않는다면 마음속 한구석 작은 공간에 넣어 두고 올해를 맞이하자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려 노력하는 생활을 기약하며
올해를 지내보자 많은 그리고 변화가 심한
사회 속 기류 속에 심지의 한가운데에서 집중하는 삶을 살자
타인의 말과 행동에 항상 좋은 점을 바라보며
긍정의 힘을 믿고 생활하자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올해 1월도 지나간다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중간의 과정이 중요함을 인지하며 올해를 보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름을 기억하며
2017년 아버지 생신
아버지
2017년 생신 축하드려요.
길고도 먼 여행을 떠난 것처럼
우리 가족이
그동안
지내온 시간들이
참 빨리도 흘렀네요.
아버지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니와 더불어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겪으면서
아버지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지금 이 순간
이처럼 큰 행복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큰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함께 하는 가족이 있음을 항상 기억하시면서
오늘 하루 아버지 생신 이날에 크진 않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하루가 되시도록
우리 가족 모두가 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네요.
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항상 오래오래 웃으시면서 지내세요.
생일의 의미 For Seungwon
살다 보면서 느끼게 되는 소소한 작은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깨닫게 되는 자아의 충만감 현실의 벽에
때론 그저 한없이 무너져버리는 홀로 서는 자신의 나약함에 지쳐가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잠시만 뒤돌아봤을 때 주위에 항상 묵시와 묵언의 말들로
자신을 지켜주는 동료와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생일에 대한 세월의 가산되는 새록새록한 의미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감에 한 살을 더 먹어감에 새삼 알게 되는 느끼게 되는
세상에 대한 고마움과 절실함 이 세상에 태어났음에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다시 주위 사람들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생일의 의미를 알게 되기를 깊이 느끼게 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This I Love
바람의 흐름을 따라 깊이 더 깊이 침묵의 저 깊은 해저의 심연을
지나듯이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같아짐에
어느덧 뒤돌아봤을 때 내가 우리가 지금 바로 이 순간 마주치게 될 많은 인연들
서리가 내리는 초겨울과 낮과 어두운 밤의 경계에 선 한여름의 지금 이때에
떠오르는 그때의 친구들과 인연들 마치 선양의 불빛처럼 잔딧불의 그것인 양 다 지나가 버린다 양초의 꺼짐과 같이 다 지나가 버린다
내일은 이런 순간의 기쁨과 이런 느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심지의 굳은 결단력을 갖고서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자
형과 조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왔던 많은 일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보지 못했던 많은 이들.
지금은 하나둘씩 보고 싶어진다. 그중에 나의 조카도 많이 보고 싶은 요즘이다.
하나뿐인 나의 조카 그리고 함께 했었던 짧았지만 항상 내게 힘이 되어줬던
나의 하나뿐인 조카.
보고 싶다.
많이.
내가 특별히 조카에게
해준 게 없다는 게
그것으로 조카에겐
많이 아쉬운 요즘이다.
하나의 의미가 된 듯싶다.
나의 하나뿐인 조카이기에.
향연의 들떠있던
나의 젊은 시절 속에
하나의 중심이 되어가는
나의 조카.
내 혈연의 한줄기 빛이
되어줄 나의 조카.
많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조카를 위해서라도
힘을 더 내려 한다.
솔직 담백한 나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도록
그저 묵묵히 조카의 듬직한
작은 나무가 되어 주고 싶다.
크게는 아니더라도
그저 작더라도
조카에게 힘이 되어 준다면
생일 for Hong Joon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할 시간이 더 많기를
항상 기원하며 그리고 건강과 개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며
요즘 들어 점점 바빠져 가는 일상이지만
항상 초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근면 성실히
일과 사람에 임하는 그대의 모습에
깊이 저절로 심연 깊이 고개가 숙여진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그대의 생일을 축하한다
가을 속으로
저 멀리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의 향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가을이다 생각과 세월의 흐름에 만감이 교차하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옆에 있는 동료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항상 기억에 남는 것은 오래가지 않더라도
몸에 배어든 정의 관계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순 없는 듯하다
느낌보다는 행동의 결정에 나의 판단을 맡기며 내가 소중히 하는 모든 이가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나의 그대들을 기원하며 그리고 기약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 없듯이 연을 맺고 지금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을 항상 마음에 되새기며
매일 매일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했으면 하는 바람이 앞선다
건강과 행복의 나룻배의 한줌 행복의 물을 그대에게 주며 행복하기를 항상
밝은 홍준의 모습을 그리며
우리 사무실엔 항상 미소와 기쁨의 역할을 다하는 기쁨조 직원이 있다.
그 직원을 생각하면 매일 매일 힘듦과 반복된 일상의 젖음에 싫증이 날 때도 있지만
항상 우리들에게 위로의 안도와 행복을 주는 직원이다.
그 직원의 행복과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우리 직원들은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그 직원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는 자세로 하루를 임한다.
왜 항상 좋은 사람에겐 안 좋은 일이 생기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데에는 그 의미가 각자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는 하루이다.
항상 건강과 행복의 자리에 그 직원이 살아있는 의미를 알 수 있기를 기념하면서
그리고 항상 우리의 옆을 지켜주기를 기도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쾌유를 바라면서.
겨울
일 년의 마지막 계절 겨울이 다가온다 누군가에겐 쓸쓸함이 될 수도
그 누군가에겐 새해의 희망이 될 수도 있을 올해 마지막 계절 겨울이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올 한 해도 유유히 지나가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교감 그리고 계속되고 반복되는 일상에도
주위의 동료와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처럼 마냥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올 한 해
행복은 멀리 있지만 그 누군가의 행복이란 그저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과 마냥 함께 계속해서 지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알고 보면 가까운 곳에 나의 우리의 행복은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실수를 우리는 계속해서 하고 있을 뿐이다 겨울이 다가온다 올해의 겨울이.
중제실에서의 마지막 승리
고만 고만 딱 그 정도만 그 마지막 순간에
어느덧 다가온 18시 쫑쫑 퇴근시간
집에 가면 뭐 할까 쉬는 날엔 뭐 할까
다가오는 화요일엔
영석이 형과 담배 한 모금 하는 순간이
다가오겠지
휴 후
시간아 빨리 가다오
오
시간이여
우리 홍준이가
어여 어서 빨리 빨리 집에 갈 수 있도록
우리 시간님아 빨리 가다오
힘내고
마지막까지
Rright Here Waiting For You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간 많은 기억들 그래도 그 시절 그런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이렇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 서있는 것일지도
그렇게 살아감에 느껴지는 많은 것들 그리고 생각의 상념 속에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속해야 할 길 그러함에 내가 깨달아야 할 많은 것들
살아감에 스쳐 지나갔던 많은 인연들 그 인연들의 슬픔과 자애감들 때론
그땐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내 자신의 후회감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되어가는 나의 성숙함들
그러나 이제는 하나둘씩 없어져 가고 사라져 가는 인연들
그래서 더욱 그리고 끈질기게 기다리려 한다 나의 삶 속 미지의 희망을 찾아서
그리고 나의 생명의 용틀임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 위해서 이 밤에 그대들을 기다린다
To Love You More
항상 옆에 내 곁에 있어주는
항상 나를 걱정해주는
나의 마음을 눈빛으로 이해해주는 나의 사랑과 그들의 사랑이
일치하는 그리고 항상 마음의 언저리에 남아있지만 잊어야만 하는
그들 그리고 지금의 내게 주어진 많은 인연들
그 속에서 발견되는 나의 희망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싹의 돌출되는 빛의 형상처럼
용기를 내어
내일을 향해서
내 곁에 나의 그들을 위해.
우리 곁에
있어준 그들의 노고에
오늘 하루도
시작하고
마감한다
나의 웃음 속
그들의 눈빛이 아련하기에
내게
주어진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 간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 흘러 흘러
저 멀리 다가올
미래의 우리의
보금자리 시간을 향해
삼겹이, 그대 이름은
처음 본 그대의 모습 그때와 지금의 그대의 모습은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일련의 더함도 더 뺌도 없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대.
나의 모습과 그대의 모습이 일치하게 될 날이 오게 된다면
하늘의 그 모습인 양
태양의 그 열렬한 모습인 양
저 멀리 해류의 드넓은 바다 속
깊은 심연의 그 모양인 양
그대를 그저 기다립니다.
주룩주룩 비가
어느 일요일 오후
주룩주룩 내리는 비
하늘의 새하얀 빛의 눈물인 양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비인 양
주룩주룩 내린다
20대 30대를 보내고 그리고 40대를 맞이하며
어느덧 하나둘씩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다
시간의 흐름에
내가 과연 그동안 내가 원했던 것을 이루어냈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나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대답은 글쎄다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던
그동안을 생각하며 지금 이 글을 쓴다
드넓히 크게 이루어낸 건 없더라도
마음의 성장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단순한 미지의 두려움은 없다.
때론 혼자라는 생각의 깊이에
파묻혀 나락에 떨어진 양 고뇌의 쇠사슬에 묶인듯한
고통의 시간의 굴레도 있었더라도 사람들이여
주위를 둘러보라 눈에 보이는 마음에 와닿는 주위의 사람들과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이 나의 우리의 마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느끼고 겪으며 알아낸 것이
주위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다소 한정되더라도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라
월요일을 준비하며.
2주년 홍준, 축하하며
지난 2년간의 추억들 많은 고비와 동료들과
순간순간 간절했던 매 순간의 절박했던 그리고 이루어냈을 때의 동료들과의
웃음 속 나와 우리의 함박웃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잊지 않고 묵묵히 일해가는
그대 모습에 숙연히 고개가 숙여진다.
항상 우리와 그대가 있기에 우리 팀은
그 어떤 고비도 능히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대가 있기에 우리 곁에 그대가 있기에.
2주년, 승원, 기념하며
처음 봤을 때의.
기약하며
승원이의 모습은.
글을 마친다.
작지만 강한 어른스런
든든한 모습이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모습의 승원이를 생각하며
한 단계 한 단계를 밟아가며
꾸준히 우리와 더불어 성장해가는
승원이가 참 자랑스러운 요즘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작은 말처럼
곧 가정을 꾸릴 승원이를 축하하며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그 청년의 밝고 희망찬 모습을
상기하며
이제는 그와 함께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걸어갈
그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승원이 집들이
참 빠르다 빨라
엊그제
승원이 결혼식에 갔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승원이 집들이를 가게 되는구나
살아가다 보면서 알게 되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그리고 항상 승원이의 주위에 승원이를 걱정해주고 신경 써주는 이가 있음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 지냄에 의미 부여를 각자의 상대에게 소중함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돌담 깊이 꽃 몽우리 피어나네
참 많은 세월도 흘렀구나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지내온
지나간 세월들
아침에 문득
생각에 잠든 오늘의 지금 이 순간 창밖에 보이는
산들 산들 바람 속 우러러 우물쭈물 샘솟아나는
작은 물줄기처럼 피어나는 꽃 몽우리
이 꽃 저 꽃 꽃내음새 맡으면서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깨어있음을 느낀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인생사의 인간 관계 속 이 사람 저 사람들 속에서 나의 몫을 그들과 함께하면서
이제는 잊혀지지 않는
나와 우리를 기약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아이 좋아라
꽃향기의 내음새.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올 한 해도
이렇게
시간의 화살에 쫓기는 양 지나가네요
생각을 다 행동에 옮기기엔 많이도 벅찼던 한 해였던 것 같네요
생각의 차이겠지만 계속되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더라도
참고서 나아갈 때 어찌 보면 나아짐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누구나
어느 누구나
다 행복의 길을 향해 잰걸음으로
그 속의 지름길이 없을까 하는
의문의 질문을 자신에게 내던지기도 하는
이때에 행복의 잰걸음이란 알고 보면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 바로
그 동료 바로 옆의 그 인물
이렇게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행복을 주는 이가 바로 옆에 있음을
정녕
자기 자신은 모르고 지나가
버린 한 해가 아니었는지 돌이켜 봤으면 하네요
가까이에 있는
그 사람이 자신의 행복임을 알아갑시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꽃과 나무 그리고 그대의 사랑
그대가 지나간
그리고
지나온 자리 그 자리에 내가 있었나요
나와의 기억이 있었나요
항상 모든 것에 의미를 두던
그대의 두 눈빛에 맺혀있던
그대가 내게 정녕 하고 싶어 했던 말하고
싶어 했던 수많은 말들과
그 행동 하나하나 속에
나는 그대를 그저 느끼고 싶었기에
그저 그대와 함께 하고 싶었기에
저 멀리 떠나가
버린 저 높이 깊고 깊은
마음속 미로에 빠져버린 그대를 그저 느끼고 싶어서
꽃이 피는 그 꽃의 곁에 나란히
마음의 깊은 비수처럼
그대의 분신인 양 옆에 그 꽃을 지키고 있는
그 나무의 모양인 양
이제는 그대를 놓아 주려 합니다
그대가 내게 그랬듯이
나를 사랑한
나머지
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 했던
그대였음을
지금 내가 잘 알기에
그대여
이제는 잊어야 할 시간이네요
그 시간의
추억을 인생의 시간에 저 멀리 남겨둔 채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최영석 시집
나의 삶
지은이
최영석
발행일
2021년 12월 25일
이용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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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 청소노동자의 이야기“
- 제목: 계속되는 현장노동자의 투쟁, 그 투쟁은 진행중이다. -
헉 헉 거리는 숨을 저 멀리 한 채로 조합원을 향해 급히 뛰어가는 어느 청소노동자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도 그 청소노동자는 다급했을까.
그 무엇을 위해서 다급했을까.
자신이 속한 조합원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 아니면 자기 자신의 일신의 안익을 위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 때문이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세상은 아직도 변하지 않음에도 굴복하지 않으려 했던 청소노동자의 다기진 의지였을까?,
변하지 않은 자신의 소속 사업장에서 조금이라도 아니 좀 더 작게라도 조합원들의 얼굴에 환한 그리고
앳띤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였을까?
대학가 내에서 이루워지는 많은 일들 속에서, 청소노동자들을 향한 대학 관계자들, 교수들, 학생들의 이면에는
과연 그들 청소노동자를 향한 시선은 어떤 것이였을까.
그저 더운 여름내내 땀 흘리며 묵묵히 일한 나머지 옷애 벤 땀냄새를 싫어하고 직설적이고 독설적으로 야유와 핀잔
그리고 모독감을 줬던 대학 관계자,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조금이라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니 당신 청소노동자들의 자식의 뒷바라지에
작더라도 보탬을 더하기 위해 시작했던 대학 청소 노동들.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들과의 연일
그러나 조금이라도 나아진 환경속에서 일하고자 투쟁했던 그 모습들이
그들(대학관계자, 용역업체, 교수와 학생들)에게는 미움의 모습을 박힌채 살아가는
그런 처양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았을까.
좀 더 나아지기를,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바라마지 않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자행되는
그들의 뒷모습과 앞모습에는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적잖은 괴리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청소노동자간에 서로간에 이간질을 시킬까.
어떻게 하면 그들 청소노동자들 스스로가 자학하듯이 스스로 물러설 수 있을까 하는 그들
(대학관계자 그리고 용역업체)만의 계산된 리그의 모습에 혀를 내눌리게 한다.
대한만국 아니 한국이라는 사회에 내포된 그리고 그 단면의 이면에는 아직까지도
청소노동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투쟁을 계속하며 연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그 이유는 변하지 않고 괄목한 변함이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왜 그리도 그들(대학관계자, 용역업체)은 그렇게도 가혹하리만치 사람과의 관계의 잇속을 이용하여 청소노동자를 괴롭혔을까.
노동에 대한 대가의 요구는 정당한 요구이다.
또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 청소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대학관계자, 용역업체)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저런 핑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채
청소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되돌아 가야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이런 행태 자체는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그런 노동을 하는 우리 노동자들끼리도 단합하지 못하고 그들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자들에게
기웃거리며 자신만 살아 남으면 된다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의 한국이다.
그러나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그리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이행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과 복리후생을 정당하게 요구하여
관철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아직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그 순간이 오더라도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는니라 라는 문구처럼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아직까지는 그리고 계속해서 투쟁하는 속에서 희망이 존재한다.
현장속 노동자들 모습 그 자체가 희망이기 때문이다.
불굴의 위험을 피하려는 그리고 비겁하게 살아남으려는 환경 속 노동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모습은 하나라는 일심의 마음은 져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득을 위한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계속되는 사측과의 투쟁속에서 단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로 연대와 멈추지 않는 투쟁이다.
혼자서는 나약하더라도 뭉치고 모여 연대를 하게 되면 더 큰 파급력이 발휘된다.
또한 순간의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고 자만하여 그속에서의 투쟁을 멈춘다면 그것은 곧 패배이다.
어디까지나 투쟁은 계속하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길 만이 우리 노동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청소노동자의 마지막 말씀이 떠오르고 잊혀지지 않는다.
“ 아직 나는 현장에 있다. 현장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현장을 벗어나서 그저 홀연히 떠나버린다면 그것이 과연 승리일까.
아니다.
끝까지 남아서 살아남고 지속해서 투쟁하는 자가 결국의 승리자이다.
거창하고 거대한 승리를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그리고 다만 연대의 승리를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 노동자들인 것이다.
멈추지 않는다. 계속된다.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다.
노동자에서 노동자에게로. 그것이 바로 노동의 역사이자 연대의 역사이다.
우리는 비로서 그 곳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바로 그 노동 현장에서 말이다.
일하는 것에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노동자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동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가식일지 모른다.
이유는 내 자신조차도 그 환경을 완벽하게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아가야 한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멈추지 않고서.
오늘의 향기
삶에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오늘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가치를 늘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우리 삶의
희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 가는 것에는
모든이가 느끼고
싶어하는
그것
바로
인생임을
모든이가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바로 가족의 의미가 아닌 듯 싶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는
가족이 있었기에
나라의 존재 의미 또한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나의 삶
우리의 삶
그리고
너의 삶
모든 이의 삶
바로
우리라는 개념.
너라는 개념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어머니의
삶
아버지의
삶
형의 삶
누나의 삶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조국
나의 대한민국의 삶
또한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그리고
우리의 사랑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존재한다.
네가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조국
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사랑이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 사랑이다.
생각과 관념의 차이.
소소한 생각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생각.
아버지의 생각.
형님의 생각.
누님의 생각.
삼촌의 생각.
외숙모의 생각.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의 생각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작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도 어려운
현실의 지금이다.
10원을 벌기도 너무도 어렵다.
100원을 벌기도 너무도 어렵다.
1000원을 벌기도 너무도 어렵다.
10000원을 벌기도 너무도 어렵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이제는
나이가 너무도 들어 버렸다.
보고 싶은 이
보기 싫은 이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존재로 인해서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나의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종교의 신념
무종교인의 무작왈신적인 천방지축의 개념 덩어리 등등.
이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속에 존재하는 많은 이들이
이들이 있었기에
지구의 한 행성 혹성
등등의
작은 이름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이렇게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이렇게
저렇게
새롭게
보인다.
고 정주영 선생님 기리며
아버지, 그 이름으로 한 나라의 역사를 새긴다.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의 내게 투영된 모습이란,
너무도 엄하시고 칼과 같은 곧은 성격의 아버지 이셨다.
어린 시절, 어느 하루라도 늦잠이라도 자는 것은 아버지 성격상 당신 포함해서 집안 구성원 모두에게 하락되지 않은 불문율 같은 것이였다.
너무도 매사에 근면해라, 실패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과정을 중요시하고 포기하지 말아라.
어떻게 보면, 교과서 적인 말씀이셨지만, 지금의 내 나이 40을 넘어서 생각해보면,
그 말씀 한 마디 한마디가 그 시대의 그리고 작금의 지금 이 순간에도 통용되는 진리였였다.
크게 되지 못하더라도,
큰 성과의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한 이후에 그에 따른 결과를 기다려라.
이렇게 매번 말씀하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정주영 선생님의 글을 읽고서 순간 떠오르는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
정직해라. 근면해라. 성실히 일에 임해라. 타인의 신용을 얻어라.
그리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 하면 그에 상응하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때로는 엄한 아버지로 인해 가족 구성원과의 작은 마찰과 불화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이 올 때면 마음속의 작은 안식과 평온의 상징처럼 집안의 안녕을 가져다 준 어머니가 있었다.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티끌모아 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어머니 당신만의 철학을 갖고서 살아 오셨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혈혈단신 그 당시 섬이였던 전남 완도군 신지면에서 이곳 전남 광주에 오셔서
노상 과일장사, 구멍가게, 막걸리 자전거 배달, 막노동 등 안해 본 것 없으신 나의 아버지 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그 당시의 아버지는 부지런 하셨다.
몸이 약한 어머니가 몸져 자리에 누으셨을때도 초등학교 봄 소풍이라면서 마냥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내게
그 당시 100원 짜리 동전 한 개를 내손에 꾸욱 쥐어주시면서 하시는 말씀,
즐겁게 명랑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친구들과 놀다 오너라,
하시던 아버지 말씀을 떠오른다.
나중에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그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왜 이렇게 없이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공부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정주영 선생님의 아버지 역시도 나의 아버지처럼 지난 세월 가난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안을 일으키고 자식을 키워 내야 하겠다는, 굳은 결의 였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그 이름 하나 만으로도 정주영 선생님의 글을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속에 작은 눈물의 울림과 서글펐던 그 당시의
나의 가족의 애련함과 동시에 정주영 선생님의 애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과연 정주영 선생님처럼 그 시절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 6·25 전쟁, 5·6공 시대, 88 올림픽을 겪으면서
피부로 그리고 심적으로 느꼈을 파란만장한 시대의 조력과 배신의 역공을 맞으면서
개인의 한계점을 극복하면서 정주영 선생님 본인 자신 그리고 가족, 더 나아가서 회사, 마지막으로 한 나라의 국가라는
개념의 성공과 오뚜기처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정주영 선생님만의 투기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주영 선생님의 글을 읽어가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리고 문뜩 스쳐가는 것은 과연 나의 조국,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에 그저 일에 파뭍혀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서 잊고 살아갔었던 것이 나라라는 개념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위해서 소소하게 자신의 맡은 분야에서 성실 그리고 근면하게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한국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 이런 질문은 한다면, 당신들에게 나라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고 말이다.
나의 생각의 맞다면 그들의 답변은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나라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나라가 있기에 나의 가족이 있으며, 나라가 있기에 나의 조상의 안녕이 있을 것이다.
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평이하고 단순한 답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답변 속에는 한가지 그리고 무수한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의 뿌리, 우리의 뿌리, 우리 조상의 뿌리는 혼은 하나라는 점이다.
그 옛날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그 많고 많은 험난의 세월과 역경을 그 순간마다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혼(魂)의 일체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주영 선생님께서 반세기 이상의 세월속에서 겪었었던 순간 순간의 역경과 고난 또한
정주영 선생님 당신 본인의 투혼의 혼외에도 격동의 그 시대에서도
한 나라라는 국가로서의 한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고난의 드라마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절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무너졌던 순간도 나라라는 국가로서의 한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가정의 나라의 의미인 아버지라는 가정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있다.
또한 그런 아버지를 내조하며 물심양면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력을 주는 어머니 또한 있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속에서 성장의 과정을 통해서 이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자식들이 있다.
그런 자손의 자식들이 바로 우리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자손의 자식에는 정주영 선생님도 포함될 것이며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포함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겨 되는 역경과 좌절속에서도 그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서 커다란 결과물을 만들어 낸 분이 바로 역사속의 정주영 선생님의 한 역사의 부분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회사를 발전시켜 한 국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가했던 분이 정주영 선생님이였다.
한 개인의 커다란 결과물로 치부하기에 너무도 값지고 큰 결과물을 이루워 낸 장본인이 바로 정주영 선생님이다.
가정생활의 유지와 지속,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고 회사를 경영하면서 정주영 선생님께서 겪겨 되는 다양한 난관들,
노사분규, 상하 경직되어가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시대적 세태들의 흐름들,
시간이 흐름에 바뀌게 되는 정치 세력들의 야합속에서의 부대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거림 등.
수많은 난관들을 하나 하나씩 헤쳐 나아가는 정주영 선생님의 선구와 개척 정신 또한 엿볼 수 있는 계기의 내용 또한 엿볼 수 있었다.
과연 이 글을 써내려 가는 나라면 그 시대에 태어 나서 그런 환경속에 놓여 있었다면
그렇게 아니 정주영 선생님의 분신처럼 그런 상황들을 헤쳐 나갈 수 있었을까.
제아무리 특출나고 재능이 뛰어난 일개 개인이라도 투철한 정신 자세와 강인한 체력이 혼연일체가 되지 않는다면
정주영 선생님의 그 모습처럼 해낼 수는 없을거라고 사료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게 되는 것들 중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아첨과 험담들을 섞어가면서
본연의 일은 제쳐두고 자신만의 영위를 위해서 그리고 어찌 보면 냉험한 현실속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는 영악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시대의 흐름속에서 어찌 그런 사람들을 비방만 할 수 있겠는가.
내 자신 또한 그런 맥류속에서 그렇게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며,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설령 그곳이 사회든, 군대라는 폐쇄적인 곳이든, 가정이든 상관없이
그랬던 적이 있는 일개의 개인인 나이다.
이야기 하고 싶은 요지는 정주영 선생님 또한 남이 하듯이 그저 남이 걸어온 쉬운 길을 답습하여 v
왜 걸어가고 싶지 않았을 것인가.
왜 그렇게도 험난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남이 굳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왔던 것인가.
왜 무엇 때문에 쉬운 길이 있고,
쉬운 길이 보였음에도 비굴과 비정의 정도의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묵묵히 정도의 길을 정주영 선생님께서는 걸었던 것인가.
정주영 선생님의 글을 읽어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뇌리에 스쳐갔다.
펑범하지 못해 비범한 존재로서의 정주영 선생님의 두각을 나타내는 인생의 한줄기의 여러 면을 보여주기 위한
단순한 의미로서의 글은 아니였다.
오히려 한 개인인 정주영 선생님의 일을 처리해 나가는 뚝심의 굴지의 의지,
그리고 그 속에서 가정, 사회, 국가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였던 것이였다.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정주영 선생님의 일생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정주영 선생님이 지키고 싶어 했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그리고 어머니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지키고 싶어 했었던 그 사람,
정주영 선생님의 의지였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아무리 힘든 역경과 반복되는 실패의 시절이 오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아니 정주영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과정이라는 힘든 순간들을 통해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단순히 성공 신화로서의 개인의 자서전이 아니다.
그속에서 우리 자신이 느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은 바로 “겨울은 반드시 봄이 온다”는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갖고서
아무리 힘들더라고 아무리 어렵다라도 아무리 반복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길을 향해 나아가라는 정주영 선생님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고 정주영 선생님의 뜻일 것이다.
정직, 신뢰, 신용, 근면, 성실, 긍정적인 마음과 자세, 최고의 노력
이런 많고 많은 의미의 단어들을 재탄생시킨 정주영 선생님의 뜻을 기리고
또한 행동으로서 보이는 것이 이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책무가 아닐까.
정주영 선생님의 뜻과 행동을 기리면서
그리고 정주영 선생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1980년 5월 17일 광주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빠!
내일 저하고 집에서 맛있는 거 해먹어요. 그러실 수 있죠?
내 나이 40즈음에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딸이 했던 그날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저 묵묵히 하루 하루를 버티며 근면 성실이란 단어를 생활의 모토로 삼으시며 기근을 이겨내 가셨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부유한 집안의 유복한 생활을 근처에서 지켜보던 나의 어린 눈망울을 지켜보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 집안의 가난 만큼은 없애고 이겨내겠다고 다부진 다짐을 했었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 반복되던 생활의 고됨이
어느 정도 지나갈 무렵에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하고 싶은 않고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 있는
1980년 그 당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생각과 만감의 교차에도 그저 지나칠 수 없으리만치 잔인했던 그 순간들.
왜 그렇게도 군부세력들은 우리 광주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시민군들과 죄없고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을까.
1960년대 대학생활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 시절.
그저 집안의 생계가 걱정되어 내 자신이 집안의 장남으로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묵시의 나자신만의 결정을 하고서
입대한 군 시절. 만기 제대 후, 많이도 변한 세상의 모습에 그저 뒷걸음질 쳤었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살아감에 큰 의미는 아니더라도 내가 있기에 가족이 있다는.
그저 그 신념과 가족에 대한 신의 하나만으로 대학에 복학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의 첫발을 서울로 상경하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회 초년생 생활을 시작하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인 광주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먼발치에서 나를 기다리던 고향의 어머니 마음일 것이다.
서울 생활에서의 생각과 만감의 교차가 되던 직장 생활을 계속하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대학 동창과의 재회가 있었다.
대학 시절, 나의 모습이란. 그저 평범한 그리고 그렇게 잘생긴 모습의 남학생도 아니였던 나를.
그 여학생은 어찌 보면 상경해서 고군분투하게 그리고 명랑하게 대학 생활을 하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며 작지 않은
안도감과 위로의 작은 마음을 건내 주었던 그 여학생 이였다.
지금 이 순간 내 나이 환갑을 맞이하여 그때의 그 여학생이 나의 배필이 되어 함께 힘들었지만 희희고락을 함께 해주었던 것 자체에 감사함을 표현할 뿐이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그때에 며칠이 지난 후 나의 아내와 늦둥이 나의 막내딸은 무자비하게 시민을 향해
총의 칼날을 겨누던 계엄군의 총알을 맞고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세상의 사람으로 태어나, 크지 않더라도 작은 의미 하나쯤은 남기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인생의 커다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젊은 시절.
그 젊은 시절의 나에게 그런 작은 의미를 일깨워 주웠었던 나의 아내이자 나의 대학 동창생.
여보, 행복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멀리 있지 않아요.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나의 곁에 있어 주는 가족 자체가 행복의 의미가 아닐까요.
여보, 고뇌의 연속인 세상살이 이지만, 그래도 살아야겠지요.
살아가면서 고민도 해보며 넋의 아련함도 느껴 보는게 어떨까요.
이렇게 나에게 아니 나의 곁에 끝까지 있어주면서 희망의 눈방울을 심어주었던 나의 아내이자 나의 늦둥이 막내딸 이였다.
계엄군의 총알의 칼날이 나의 아내와 막내딸의 가슴을 뚫고 지나 갔을 때,
나의 삶은 그 순간 멈추었다. 아니 끝나 버렸다.
그 누가 이런 말을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스쳐지나 가던 순간이였다.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의 애련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그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이라는 것임을.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향해 그저 떨어지는 눈물자욱이 있더라도.
이제는 내게는 아내와 막내딸이 없다.
그저 가버렸다. 그저. 그렇게 말이다. 자유와 평등의 슬로건 아래에 서서,
대한민국 한국의 민주화의 성지이자 성토가 되었던 광주의 그 시절.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또 많은 이들이 상처와 고통을 지닌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그들이 그 날을 상기하게 되면 고통의 어둠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왜 그리도 자유를 향한 민주화의 영혼의 사람들에게 그런 총의 칼날을 세워야만 했을까.
권력의 야욕과 그저 그저 무고한 한 시민, 계엄군 그들의 눈빛에는 그저 의미 없는 한줌의 잿덩어리의 목숨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세계의 역사상 그리고 한국의 역사상에서 조차도,
많은 유구한 권력의 대한 서민의 탄압의 시대는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리 서민과 시민들은 묵묵히 그런 탄압의 역사를 이겨내 왔다.
종교의 신념과 역사의 신의를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인 역사의 신의를 지키려 했었던 서민의 삶 자체가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자유를 향한 그리고 민주화를 향한 세상의 한줄기 뜻 깊은 모습이 아닐까.
권력의 야합속에서도 반복 되 왔던 역사의 서민을 향한 탄압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감히 말한다.
그 증거와 유증의 자료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히 박혀 있을 뿐이다.
물리적인 증거와 자료는 권력의 옆에 선 사법기관의 장수의 머리에 있을 뿐,
서민의 위한 진실된 참회와 사과의 모습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학 생활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 시절,
누구나 겪게 되는 춥고 배고픈 군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
그저 막막하게 군 생활을 희극인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군 생활을 마치는 사람들.
그리고 힘든 군 생활속에서도 옆의 동료들과 후임과 선임들과의 조화를 이루워 내면서 어떻게 하면 주위의 나의 동료들과의 화합을
이루워 낼까 하는 어린 군인들의 애틋하게 기특한 모습의 추억도 서린다.
세상의 살아감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음에 대한 서열의 판단은
모든이들의 중요한 관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판단을 함에서 조차도 그 이전의 숨겨진 이면의 의미를 깨닫는 이는 아직까지는 드문 듯 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자 논리인 듯 하지만 사람들은 아니 예전의 그들이나 작금의 사람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듯 하다.
하나이다.
사람의 생각과 그 사람들이 원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이다.
바로 믿음과 신뢰이다.
그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가족이 형성된다.
가족이 만들어지면 바로 사회의 모습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사회가 형성되면 그 나라의 문화가 이루워진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생명 철학인 듯 하면서도 사람들은, 아니 민주화의 깃발을 꽂으려는 사람
들의 생명을 앗아간 그 시대의 그 군부세력들이 깨닫지 못한 이치이다.
왜 일까. 왜 깨닫지 못한 그 군부세력들의 차디찬 힘의 논리에 그 시대의 서민들은 야속하리 만치 당하고만 살아 왔던 것일까.
왜 그렇게 무시받고 손가락질 당하면서 살아 왔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니 이미 설해져 있다.
사람마다의 고유한 생각의 다름.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해가는 것. 그리고 또한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서 사회라는 구성원의 모음의 인격체가 비록 개개인의 다름이 있을지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비로서 사회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가난은 게으른 자의 변명일 뿐이다.
부의 축적은 하나의 근면함의 토대의 생산물이다. 라고 말이다.
부를 갖고 태어난 자.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가난의 숙명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에는 가난의 뫼비우수의 띠에 갖혀서 헤여나오지 못하는 자.
어찌 보면 세상은 부와 가난의 양극론의 세상인지도 모른다.
부의 논리와 가난의 논리는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1980년 5월 당사의 민주화 항쟁의 의미 또한 어지 보면 부의 축적으로서의 군부 세력들의 자신들만의 아집과 고집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서민을 향해 윽박지르며 내지르는 듯한 그들 군부세력들의 외침이자
마지막 발악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자에게 물어 보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말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는 그저 하루라도 더 연명하기를 그와는 반대로 그저 하루라도 더 빨리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의 깊이는 다르더라도 부와 가난은 두 개념이 차이가 아니라 돌고 도는 인생의 한 장면처럼,
그리고 계속해서 무한히 반복되는 우주의 깊은 탄생의 섭리처럼 반복되는 것임을 감히 말한다.
많은 세기의 역사속에서의 서민의 죽음들.
그리고
그 서민의 죽음속에서 발견되는 그 숭고한 의미의 발견들.
반복되더라도 그리고 역사의 생의 고리가 연속되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는 아니 우리 서민들은 발견하고 발견되고 있다.
생명의 고리는 소중하다는 것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제아무리 부의 축적이 완성되어 한 나라의 통치자를 넘겨보는 자가 있더라도
그 사람의 단일인 로서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다.
그 부의 사람의 옆에 아무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의 그 사람의 의미는 재의 그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생과 사의 의미는 서민의 그것과 일치한다.
80년대의 민주화 항쟁의 의미 또한 생과 사의 치열한 군부와의 사투속에서 일어 났던
리얼한 현실의 한 장면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일신의 무한대의 자유를 향한 투쟁이 아닌 어떻게 함께 라는 의미를 내세워서 다함께 잘살자.
다함께 이겨내자.
이런 의미의 모토로서 그저 다함께 잘살아보자는 하나의 투심인 것이였다.
단순하게 작금의 현실에서 왜곡되어 버린 5.18 민주화 항쟁의 의미 부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자유을 향한 투쟁의 계속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나간 시간의 연속됨과 지금의 이 현실속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조금이 나은 삶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나의 자식 세대들에게 만큼은 나의 없음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게
그러나
얼굴에는 밝고 앳띤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묵묵히 일을 하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들이 있다.
그들 또한 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들도 역시도 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80년대 민주화 항쟁속에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 그리고 자식세대에 이르기까지 다 잃어도 결코 단 한가지 만큼은 잃지 않으려 했기에
그렇게 까지 치열하게 싸워 왔던 것이다.
서민의 자존심과 대한민국의 자유를 향한 애국심 이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 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자유를 위해서? 단순한 나라의 대한 애국심 때문에? 향간에는 이렇게 5.18 민주화 항쟁에 대해 왜곡하고
잘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80년대 민중항쟁의 단면의 일각만을 본 이들의 시각이다.
자유가 없음에 대한 그 상황에서의 처절함을 겪어 보지 이들의 비겁한 변명일 뿐인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음을 겪어 보지 못한 이율배반적인 사람들의 어리석인 행태인 것이다.
사회 생활의 영위와 가정 생활의 추구, 이 모든 것은 개개인의 자유와 한 나라의 영구적인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라가 없다면, 한 가정의 행복함이 없다면, 과연 그 개개인은 삶을 살아가는 의미 있을까.
의미 부여 또한 될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이미 이치와 이성 및 논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에서 답이 나와 있다.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그리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 해서,
그 특정한 사람을 차별하고 차이를 둔 시각으로 봐라본다면, 그 사회와 그 가정은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마다의 각자만의 개성과 특질이 다름을 변화하는 지금의 이 현실 사회에서는 인정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80년대 5.18 민주화 항쟁의 시대적 배경 또한 서민들의 가난의 연속과 또한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사회의 모든 면에서 발전이 되어 가는 시대의 한 줄기인 시간이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또한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발전이라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되는 서민의 목숨은 버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발전의 과정속에서 서민의 희생을 통해서 경제 발전, 사회 발전, 나머지 민생의 안정화,
이분되는 사회 분열 조장의 최소화 등의 많은 것들을 상대적 반사 이익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또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역사의 반복속에서 그들 또한 반사이익으로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의 지속함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 사람들의 단순한 항변에 지나지 않는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고, 무의미한 생명 또한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전이라는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념적인 모토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80년대 5.18 민주화 항쟁의 단면의 모습일 수도 있다.
잦은 향간의 왜곡되어 표출되는 5.18 민주화 항쟁의 껄끄럽지 않은 뒷 모습들을,
마치 80년대 5.18 민주화 항쟁이 그 지역 그리고 특정 지역 서민들의 자기 이익을 향한 반대 세력의 억압되어 발산된 모습이라고,
이렇게 왜곡되어 말하는 이들 또한 있을 것이다.
일반 서민들의 학창 시절의 모습은 나라가 있기에 개인의 삶도 존재한다.
나라가 있기에 개인의 행복 추구의 의미가 부여된다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 그리고 지금의 자식 세대와 후손들 또한 똑같은
아니 비슷한 환경속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면에서 논한다면, 개인이 행복하기에 그리고 개인이 모인 가정이 행복하기에,
가정의 모인 사회가 행복하기에 그 사회의 그 나라가 온전함과 행복의 궤도속에서 일상의 행복함을 누린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역사에서도 군부 세력과 그 군부 세력에 결탁되어 공생한 사람들이 존재하여 왔다.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속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논점은 그런 권력화에 파뭍혀 버린 세력의 사람들의 환경에
이 시대의 서민들 또한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서민들에게 똑같은 사고 방시과 똑같은 행동 방식을 단순하게 머릿속에 주입하는 교육 방식은
이 또한 언변 불일치의 사고 방식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이 온전한 사회와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하에서의 행복 추구가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이념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나라와 그 나라의 통치자들의 최후를 보면 알 수 있다.
역사의 사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않은가.
다르다고 해서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결코 개인과 사회의 불이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사회의 개개 구성원의 행복 추구와 동등한 인격권을 형성할 수 있는 주위의 여건 조성이 가능한 것이다.
80년대 군부세력이 간과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서민들 개개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였다.
개개인의 사고 방식을 하나의 기계의 통일되고 획일화된 구심점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의 한 단면이 80년대 군부세력의 민주화 항쟁을 뒤엎을려는 시도의 장렬한 실패이자 패배인 것 이다.
세상의 모든 역사 그리고 세상의 모든 국가의 역사속에서도 민중을 그리고 서민의 삶을 핍박하게 하고
저울질 하려는 권력의 세력들은 모두 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는 없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작금의 권력 세력들도 서서히 퇴색되어 없어질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세상의 많은 억압되어 가는 많은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한 나라의 지속됨을 위해사, 계속해서 의구심없이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서민들이다.
어떤이는 이런 말을 세간속의 자조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곤 한다.
한 나라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사람의 본성과 속성의 치부를 알 수 있다고 말이다.
혹여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바로 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끝까지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의 논지는 한 사람의 생의 역사 그리고 한 나라의 생의 역사 또한 어떤한 상황이 닥쳤을 때 또한 겪게 되었을 때,
비로서 그 사람의 역략이 들어난다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의미로 생각된다. 삶의 기로에 서있는 지금의 어떤이들도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 곳 대한민국이라는 양분화되고 최악의 양극화가 되어 있고 그것이 심화되고 있는 이 나라를 등지려는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를 꺽을 수 만은 없지
아니한가. 의지가 약하여 혹은 우유부단하여 자신만의 의지만으로는 곧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병들어서 그저 하루 하루의 삶을 영위함에 안도의 위로를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논점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과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조차도 국가가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기에 말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변혁과 숙명전환이 한 가정, 한 사회, 한 나라, 전세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음을 우리는 내심 자각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임은 역사의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의 변혁된 삶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처참하게 짓밣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마음이 모여 모여서, 그리고 행동이 모여 모여서, 그 결과로서 최고최선의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서민과 민중의 이심전심 그리고 보이지 않더라도 그 곳에서 자신만의 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이 모여 모여서,
사회 나아가 한 국가의 안위가 성립되지 않겠는가.
사회에서의 없는 서민을 향한 비논리적인 차별과 있는 부유층의 존대와 치부침이 한쪽으로 계속해서 저울질 된다면 그것 사회는 도태되어 없어 것이다.
언제가는 말이다.
한 사람의 인격권을 존중되고 그렇게 인정함으로써 안정된 궤도에 오르는 우주선의 그것처럼 사회 또한 국가 또한 안정되어 가는 것이다.
생명 경시 풍조와 풍족한 물질 사회 추구만을 영위하려는 사회 풍념이 계속되어 간다면 그 사회는 없어짐을 역사속에서 보여진다.
한 사람이 강해진다는 것은 그 사회가 강해지고 한 국가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단순한 힘의 논리로서의 강함이 아님 굳은 마음의 심지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혼연일체된 강함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사회나 국가도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
한 사람이든, 한 사회든, 한 국가이든 말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민중의 강함과 그 속에서 보여진 민중의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필살의 오뚜기 같은 내적 및 외적 강인함은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부인해서는 안된다.
단순한 힘의 논리로서의 한 잣대로서 민중의 삶을 판단해서도 안된다.
민중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서민의 삶이 제아무리 핍박해진다해도 다시 일어서는 저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 또한 서민의 삶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도 그런 저력의 민중의 힘을 볼수 있었음을 증명되고 있다.
하나라는 공동체의 강인한 심의 결집을 통해서 우리 사회, 우리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아니 다시 일어서야 한다.
할 수 있음을 80년대 88올림픽에서의 모습, 그리고 90년대 IMF 시대의 시민들의 금모우기 운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지역간의 비뚤어진 경계 의식과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시대의 비운의 파도 또한 서민들이 물릴칠 수 있다.
서민은 강인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강하고 강인하다는 것은 그것 또한 한 나라의 건재함을 들어낼 수 있는 강점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역사의 사실에서 보여지듯이 많은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옴을 모든 이들이 자각하고 있는 역사이다.
어떤이들이 말하는 방어만은 승리의 결과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공격이 승리의 반증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하고 말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국가의 대한 야욕과 침략에 대한 야망이,
곧 그 속에 속한 시민과 민중의 행복이 될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중이 원하는 것, 한 나라의 시민이 원하는 것을 진정 깨닫는 지도자가 우리 시대에는 필요함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그릇된 역사의식이 그 나라의 민중을 짓밟는 것임을 80년대 군부세력의 지도자가 증명하였다.
민중을 해하려 들고 민중의 올곧은 사상을 없애려는 지도자는 역사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 결론의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개인의 사상과 국가를 향한 바른 사상의 결집은 그 나라를 지탱해주는 나무의 뿌리의 그것과 일치된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한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행복함을 느끼는 척도임을 이 시대의 지도자들은 깨닫아야 한다.
그 바른 길을 가야 하는 것이 그 나라 그시대의 지도자가 가야만 하는 길은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정석이기에 말이다. 지도자는 깨닫고 또한 깨닫은 그 길을 계속해서 한 점 의혹이 없이 전진해야 한다.
80년대의 민중화 운동의 역사에서 희생되어 간 그 시대의 영혼의 넋을 기리는 것은 단 한가지 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러한 역사가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처절히 죽어가고 내 아이, 내 부모, 내 손자가 억울하게 죽어가는 역사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 나라의 지도자는 올곧게 인식하고 바른 자각을 통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제아무리 개인의 발전과 사상의 바른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의무 무상한 것이다.
바른 삶, 그리고 바른 행동으로서 우리 사회는 행복해 질 수 있다.
행복한 삶을 바라마지 않는 개개인은 없을 것이다.
배가 불러서 행복한 이는 있을 것이고, 개인이 원하는 부의 축적을 통해서 행복한 이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원하는 소기의 목표 달성을 통해서도 나는 정말 행복하다 하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논지는 한가지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의 3위 일체가 되어 가는 행복의 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이 시대의 많은 사상의 분열, 부와 가난의 처절한 양극화 시대, 사회 폭력의 극대화 등의 지금 이 시대에는 많은 역경과 쉽게 풀 수 없는 난관의 문제점이 들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개개인이 깨닫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5.18 민주화 운동의 바른 국가를 향항 그리고 올바르게 정립된 자유를 향한 그 시민 의식을 온고지신으로 토대로 삼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인하고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과거의 좋은 점은 취해야 한다.
버려서는 왼된다.
그것이 역사의 한 부분이든 혹은 지금 이 순간의 사실이든 말이다.
1980년 5월 18일 민주화 운동의 시민 정신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핏줄기 눈빛의 영혼이다.
그 영혼들의 혼이 모여서 지금의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크진 않더라도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5.18의 시대적 정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변치 않고 말이다.
그것이 5.18의 영혼과 넋의 바램일 것이다.
계속된다.
5.18의 민주화 운동은.
계속.
허리의 고통.
왜 이리도
내게 주어진 시련이
클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게도
원했건만
그렇게도
하고 싶어 했건만
왜 이리도
내게 주어진 이런 많은 고통들이
내게는
힘겨운 걸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기 에는
아직은 내게는
힘겨운 것일까.
그래도
나는 하고 싶다.
그 목표를 향해서
도전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원함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고통만큼
나도
내게 주어진
재능으로
나와 동고의 사람들에게
그 동고의 고통을
나눠주고 공유하고 싶다.
오픈과 공유
그리고
전 세계인이
공유와 오픈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과
자신이 책임져야 할 행동들에 대해서
더 이상의
힘겨운 나날을
보내지 않고서
함께 웃으며
함께 공유하며
함께 느끼며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서로에게 작은 기댐을 느끼며
서로에게 어떠한
사심없이
그저 동고의 마음으로
그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저 느끼고 싶어서
사람의 발자취를
사람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말이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나도 살고 싶다고.
느끼고 싶다고.
-계단-
한 단계 두 단계
지나게 되는 그 길의 계단
언제 올라갈까
헉헉 거리면서 지금의 멈춤에
아쉬움을 달래는 그대의 모습
숨이 차오른다
숨이 멈출것 같다
그래도 그대는 멈추지 않고
한계단 두계단 올라간다
정상에 선
그대 모습엔 기쁨보다는 쓸쓸함이
앞선다
왠지 모를 서운함과 아쉬움이 싸악
스쳐간다
그것은 그대의 곁에 아무도 못느낄
격한 격앙된 그대의 모습을
그대 자신도 알아버렸으니
그대가 원하던 그 길도
알고 보면
뫼비우수의 띠처럼
혼돈의 양상을 띄고 있음을
잘 알았기에
그대는 어느새
그대 모습에
실망하고 만다
앎과 인지의 중앙에 선
그대는
이제는 정리하고 싶어진다
이제는 쉬고 싶어한다
더이상의 반복의 길을
걷고 싶지 않아한다
삶의 연속이 그대의 그 삶을
방해할 지라도
그대는 걸으면서
깨우치려 한다
그대의 눈빛이
그대를 말해준다
-언저리-
바다에 가보면
알게 되는다
바다의 깊은 내면에
바다의 넓은 모습에
어느 덧 그대는
시골 숲 언저리에 있는
그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왜 일까
혜량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대이면서도
그대는 지금도 깊은 바다속 미로에
헤매고 있으니
시골 숲 언저리에 빠져들고 있으니
주위의 도처에
그대의 모습을 시기하는 이가
그대의 외연과 내향을 시기하는 이가
있음을 그대 자신도 알고 있지만
정녕 그대는 그 조차도 포용하려 한다
그대의 그 모습이
옳고 그름에 하나의 잣대가
될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의 이치에는
그대의 그 모습에 반기를 드는 이가
너무도 많음에
그대는 어는 순간 풀이 죽어진다
삶의 연속에
발을 뻗고 지낸 고통의 자리에
그대를 지켜줄
순간이 온다면
그 어떤 미련도
갖지 않은채
그대는 훨 훨 나비처럼
날아감을
알수 있으니
-손길 아래-
손 아래
그 깊은 심연의 손길에
소망의 길이 열린다면
마다할 이 그 누가 있을까
한 손 두 손
열리는 그 작은 손에
그대는 어는 덧 뽀한 연기의 희연에
빨려 들어간다
그래도 그대는 그 손길에
미쳐 헤어나오지 못한채
어는 덧 그 속 깊은곳에
정착하게 된다
사람의 손길에 고픈나머지
사람의 온정에 지친나머지
그대는 어는 덧 그 사람의 손길에
두 손을 내어준다
그대의 그 모습을
그 누가 비아냥 거릴 것인가
그대의 그 실수를
그 누가 비난할 것인가
그래도 그대의 그런 순수한
면모에
어는 순간 심취해 할
그대의 손길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으니
빠져든다
-온정-
따뜻한 햇살 아래
지금의 그대가 보입니다
온화하고 평온스럽게
보이는 그대가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대는 멀리 멀어져 갑니다
그래도 왜 일까요
그대의 그 모습이
아쉽게 느껴지지 않은
진정의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대의 온정이 있기에
그것은 그대의 마음의 평화가 있기에
그것은 그대의 행복함에 대한 보답이 있기에
그것은 그대의 사랑이 있기에
그것은 그대의 현재와 그대의 미래가 존재하기에
이 모든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대여
지금 이 순간 그대의 곁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그 누구도 그대의 행복을 의심할지라도
그대는 그 자체로도 믿음과 존재의 의미부여가 되기에
그대여
과거의 언저리에 넋을 놓지 말고
지금의 그대 모습에
그대의 본 모습에
힘을 넣어주기를
멀리 이곳 따스한 햇살아래서
기원합니다.
항상 그대의 곁에 있는
그대의 벗이
정류장
그들은 흔히들 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흐르면
세월이 가면
우수에 젖은 가을 낙엽이 지면
서리에 잠은 깬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면
어드덧 다 잊혀질 거라고
다 해결되어 녹아드는 눈처럼
자취를 감출거라고
흔히들 얘기를 한다
빼앗아가고 빼앗기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힘의 논리에따라
그들이 원하는 것 순서에따라
취할거라고
그들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른것이 있다
그들이 알수 없는것이 있다
그들이 가져 갈수 없는것이 있다
생각과 그것에 따른 행동의 변화
그 변화에 맞춰진 예견된 것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이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왜 그럴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쳐가는 육신과
피폐해진 몽롱한 정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질수 없는 다이아몬드
유리처럼
투명한 망토속 훤히 들여다
보일듯 하지만
내면의 꽂혀진 가슴속
세상을 향한 비수를
그들은 알지 못한다
너무도 강하고 강렬히 갖혀진
비수처럼
언제 뿜어져 나올지 알수없는
휴화산 인듯양
명일 생이 다한다
할지라도 순간의 동기만
부여된다면
언제라도
가미가제의 그 때처럼
한줌 재가 될수 있음을
그 재로 그들의 용안에
비수의 덫을 뿌릴수 있음을
그들은 정녕 알지 못한다
대학생활의 추억
생각해보면 참 많은 추억이 깃든
대학생활이였다
때론 포기하기도
가끔은 너무도 지쳐서
너무도 힘들고 외로워서
그냥 시간이 흐르듯이
회피와 외면으로 일관했었던
그때의 그 시절이였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던 걸까
왜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걸까
그때의 그 시절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아니 이겨냈더라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좀 더 나은
행복을 만끽하고 있지 않을까
요즘의 이런 저런 생각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
헤매였던 그때를 생각해본다
할수 있었더라면
아니 좀더 내 자신을 이길
용기가 더 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쩌면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쉽지만
생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지금 이 순간
생각해본다
그동안의 나의 발자취를
짏밟히고 억눌렸던 그 시절의
순간들
행복이란 단어의 의미를 몰랐던 그때
함께 했던 수많은 인연들
수없이 많이 울고 웃던 인연들
하염없이 마냥 함께 있기만 해도
그 자체로 좋았던 인연들
얼굴에 다 드러난 그 시절의 인연속 미소
지금 이 순간
추억속 인연들을 떠올려본다
그들도 가끔은 나란 존재를
기억해주길 기원하면서
그들을 사랑했고
영원히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
지나간 시간속
어느때부터
생각나는 나의 그리운 친구들
생각의 저편에 서서
그들을 저멀리 불러본다
그때의 나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그때의 나의 힘듦을 알고
조용히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그때의 이기적인 나를
저멀리 떨어지지 않고
나의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생각한다
또한 생각된다
그때의 친구들을
조용히 생각해본다
항상 그리고 생각해본다
그때의 그들을
그들의 존재가 그때의 나의 존재임을
그들의 희망이 나의 희망였음을
그들의 가족의 행복한 하루하루가
나의 앞으로의 힘찬 발자취임을
고맙다고 그들에게 말을 전해본다
그리움
어제가 지나고 오늘과 내일이
다가온다
마음속 깊이 사뭇치는 그리운
이들
그들과 공존하는 지금 이 순간
난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생각의 뇌리속에 파뭍이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의 의미를 알기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앞으로 나아가려한다
하하하 외치며
겉으로든 속이든
마음의 기쁨을 누리고서
나의 그들과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려 간다
아픔이 없는 이는 없기에
그 아픔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됨을 잘 알기에
오늘도 생각한다
나 그리고 그들
나의 가족과 그들의 가족
모두가 다 행복해야 하기에
나의 전진은 의미가 있다
심장속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그들을 생각하며
형과 누나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서원해지는 그들이 있다.
왜일까.
어렸을때의 생기발랄함과
그때의 온유했던 그들의 자취가
하나 하나씩
지금은 멀어져 간다.
왜일까.
세월의 변화속의 파뭍혀버린 걸까.
설령
그랬다 한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나의 마음에 그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에 그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어쩌면
평행선의 돛단배처럼
한가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이르렀을때
그 방향의 끝에 이르렀을때
그들과 나는
깨닫게 된다.
그들과 나란 존재는
한뿌리임을
그리고
그들과 나는
하나의 토양속의 자양분처럼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낼수 있는
씨앗임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을 마음의 한 자리에
담아두려 한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한다.
삶
나비가 하늘에서 떨어질때
지켜보던 그 님은 이미 가고 없었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삶의 연속과 희망의 길이 그러하듯
우리 삶은 보이지 않는 길로
하염없이 향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리고 너무도 잘 느끼기에
서로를 알고 지냄에
그 세월이 너무도 슬프구나
이제는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미래가 있으니
친구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다가온다.
기억속에 있던 친구들
뇌리에 파뭍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친구들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친구들
항상 그 자리에 나무처럼
있을 친구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보고 싶을 친구들
이제 다 하나 둘씩
정착을 하여 머무르고
있을 친구들
바로 앞에서 보고 있지 않더라도
항상 나의 마음과 같을 친구들
가끔은 그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마음속 저 먼걸음에
그 친구들을 담아두려 한다.
어느덧 불혹을 봐라보는 우리들의
나이
곁에서 항상 볼순 없더라도
그래도 우리의 친구들이다
그래도 우리가 항상 함께
고생했었던 그 시절을
함께 했었던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을 어떻게 잊을수
있을까
그 친구들을 어떻게 쉽게
마음에서 져버릴수 있을까
그 친구들은
나의 친구들은
우리의 친구들은
서로에게 항상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할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웠다고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친구들에게
말한다.
잊지 않고
그 때의 그 정들을
지금
이렇게 살아간다고
고맙다.
친구들.
-먼 걸음-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작은 그대의 모습
순간의 실수로
지금은 홀로 남겨져 버린
그대 모습
세월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다면
세월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그대가 떠오르는 건
아직도 잊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 일지도
때로는 그대의 못난 모습에
모든이가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주는
그대의 힘이 있기에
그대의 믿음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도
그대를 생각합니다
아직도 그대를 생각하면서
그대의 온정을 느끼면서
지금 이 순간도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여
지금의 이 순간이
잊혀지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눈물-
수줍게 웃고 있던
그 시절.
시간속에 희미해져 가던
그 시절.
스스로 위로해줄 이가
있던
그 시절.
혹시나 그를 위한 바램이
어쩌면 슬픈 바램일지도.
하지만
이젠 그를 위한 위로가
나와의 그 시간이
될수 없음을
이제는 알기에
언제가는 아픈 기억도
잊혀져가던 기억도
희미한 기억속에
사뭍혀 갈지라도
내겐 그만 보일뿐.
그저 보일뿐.
가난했던 그 시절.
그저 가난해서
버릴수 밖에 없는 그와 나의 기억.
그저 욕심과 객기에 빠져
그저 보잘것 없고
그저 가진것 없는
나를 위해 주었던 그가
있었기에.
그저 널 묶여두려
했던 나의 이기적인
발로가
어쩌면
그에겐 고통이였을지도
그에겐 비운이였을지도
그에겐 꺽여버린 날개이였을지도
한껏
품었던 작은 사랑속의 흔적도
그저 그에겐
힘들었을 고통이였을지도.
가난한 사랑과
가난한 기억의 아픔과
가난하고 여린 마음에
가난했던 그 시절에
이겨내지 못해
그저 그를 놓아주려 했던 것임을
이제는 버리려 한다.
그저 버리려 한다.
그를 위해.
-피아노-
선율에 따라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작은 귀울림 마냥
그저 마음이 편안해 진듯 하다.
작은 파도 소리에 파뭍혀
어느 덧 조금씩 석양의
태양빛처럼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듯한
산뜻한 느낌.
그저 주어진데로
그저 주는데로
그저 받는데로
그저 느끼는데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그 누군가를 위한 피아노 소리마냥
그저 떠나고 싶다.
마음 가는데로
그저.
떠나고 싶다.
이제는 어느덧
나의 작은 책임에
함께 해야할 가족이 있으니
그래도 사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야 할
의미의 가족이 있으니.
그래도 살아야겠지.
그래도 느껴야겠지.
그래도 봐라바야겠지.
하고 말이다.
그래도 삶이란.
의미있음에
살아가야겠지.
오늘 하루도.
이렇게.
-어머니의 노래
대지의 자연속
미궁의 미로에 빠져버린듯한
기분의 시절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순간 마다
손을 뻗어
구원의 길을 인도하고
그저 하기 싫어질때 마다
우리는 잘 할수 있을거야
라는
용기의 미덕을
가르쳐준
대지의 어머니
왠지 모를
미지의 매순간 매순간
숨바꼭질 하듯 마냥
내 앞에 나타나
내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
대지의 어머니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그런 연유에
평생
잊고 싶은 기억들과
항상 간직하고픈
기억들속
나의
우리의
대지의 어머니
항상
나의
우리의
나무의 그 자리처럼
그 곳에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지의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듯
싶다
그저 아무것도
자세히 모를 지언정
설혹 그것이
미숙의 반향일지언정
나의
우리의
대지의 어머니의
존재 그 자체로서
의미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을것이다
대지의 자연속
어머니 그 자체로
-나와 너 그리고 너와 우리-
몇해전 알고 지냈던
너와 내가
자주 갔었던
기억의 그 곳
너와 내가
함께한 순간만큼이나
너에 대한
나에 대한
수많은 오해
많고 많던 비아냥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되돌아보면
기억에
매 매듭 매듭마다
그저 그 순간이고픈
잔잔한 그리고
애절했던 기억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의 가난했던
그리고 순수했던
또한 그렇게라도
그저 갖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그윽한 미련들
하지만
언젠가 그 때에쯤에
되돌아 봤을땐
그렇게도
너무나도 미숙했고
어리섞었던
나와 너
그리고
너와 우리
애써 놔주려고
서로가 노력하지 못했던
그렇게라도
했음에
아쉬웠던
너와 나
왜 그렇게도
그때는
방법을 몰랐을까
시간이 해결해줄
소극적인 방법에
그저 무릎을
꿇어야 했던
어리숙했던
나와 너
그렇게도
함께 하고픈
마음도
이리 저리
저멀리 한채로
지금의
너와 내가
이렇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마치 너인것처럼
마치 우리인것처럼
시간의 경적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흠칫
놀랄 그 미래의
순간이 올때쯤에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 순간이
올때쯤에
내생의 그 때에
너와
내가
함께하기를
그렇게
함께하기를
어느 가을 밤에
-The game of life in thesedays-
인생의 한 중점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만나며
사랑을 하기도
대화를 하기도
삶의 의미를 나누기도
삶의 희망을 몸소 나누기도
삶의 느낌을 함께 누리기도
하는 요즘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나에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묻는다면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그건
나 자신이라고 말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을지랴.
삶의 의미를 따지기 보다는
내가 주체가 되어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삶의 의미도
차근 차근히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
삶이란
그저 뭉특한 구름속 무언의
떠다니는 잠자리의 그 모양새가 아닌
획일적이지만 확실한 모양새의
그것 자체가 아닐까.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루 하루가
고된 하루지만
오늘을 마치고
내일을 기약하는
나의 삶을
그 누군가가
칭찬해 준다면
그것 또한
나에게 있어서
삶의 활력소이자
삶의 윤활유이자
삶의 거름이자
삶의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오늘을 마치며
내일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늘의 의미를
내일의 기약으로
되새긴다.
- 영원-
때론 한순간의 실수와
한순간의 미숙으로 인해
내가 상처를 준 많은 타인들.
우연히
그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심심찮게
그들과 다시 재회하여
얘기를 하더라도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지금은 그저
다른 운명에
그저 다른 생활에
그땐 그렇게라도
내가 그들에거 준 상처가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나의 삶의 영위하기 위해
그저 그렇게
흘러간 버린
생애의 한 순간을 후회하면서도
그들에게 준 상처가
어쩌면
지금에서야 나의 치유의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때의 내가
한때의 그들이
같은 생각과 행동에
같은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이 순간
그저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혼자 지키려 해던
나의 의지와 뚝심의 원천도
알고보면
그들의 존재로 인해
그속에서 빛을 발했음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삶의 지속은
없듯이
혼자가 되버린
혼자인채로 살아가는
그저 혼자가 좋아져버린
때론 혼자인 내가 우리가
그 속에서 발견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생명의 용틀림의 느낌처럼
그저 그 속에서
발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늘 가까이 하지
못하더라도
늘 항상 옆에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너의 행복을 기도하고 기원하며
나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너와 우리를 상상하며
그리고 그런 삶의 여유를
기약하며
이렇게 영원한
그리고 영원스런 우리의 삶에
대한 희망찬 갈구의 목마름에도
서로다 길들여진
마냥 길들여져 삭막해져 버리더라도
너의 모습을 떠오르며
나의 발전되고 계속 성장해가는
나의 모습에
감탄할
너의 미소의 얼굴을
떠올리며
영원속에 뭍힐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원하고서
너를 기약한다.
그리고 너를 기억한다.
-어머니의 또다른 이름은 지용보살-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지열의 끈끈함과
저 멀리
대양의 깊디 깊은
수면 위로
솟아 오르는듯한
물줄기의
강인함 처럼
대지의 알수없는
미묘한 존재인
우리의
어머니
당신의 또다른
이름은
불법에서의 지용보살 입니다.
용맹함과
지혜의 힘줄기를
동시에
갖추웠으나
때론
가족의 나약함과
미숙함으로 인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시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의
불기둥처럼
저력의
완강함을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그 이름
어머니 입니다
한없이
울고 싶기도
그 누군가에게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기대고만
싶은
한없이
약해보이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이지만
그래도
그 내면의 양면에는
보이진
않더라도
사랑의 깊이 만큼이나
한스러운
사랑이
내재해 있습니다
어머니
힘과 사랑으로
이 시대를
이겨내세요
생각의 깊이.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모든 죽어가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갖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너의 존재가
우리의 존재가
하나 되는 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왜 이렇게도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쉽지 않은 걸까.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가치는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그래서
내가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깊이 있는 사고의
의미를 알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일의 명암을
갖기 위해서
내일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분투한다.
그렇게
세상은 살아간다.
그렇게.
세상은.
2023년 01월 28일_토_시집_작업_최영석_나의_삶_02
헤드폰 속으로
아침에 묻득 생각나는 헤드폰의 일상속에서
그저 그렇게
내게 주어진
아침의 일상이지만
그렇게도
잡고 싶고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그저 그런
일상 이였지만
오늘 하루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를 찾아보면서
우리를 되찾아 보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 덧
세월의 무게감을 갖을 때 즈음엔
나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을
알게 되어
내 스스스로가
소스라치듯이
놀라게 된다.
과연 그것이
삶의 이치 일까
과연 그것이
인생의 길잡이 역할론 일까.
알수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도
잊고 싶었던
기억은
잊으려 하지만
하염없이 몰려온는
졸음의 미소를
저 멀리 하고서
오늘 하루를
힘차게 시작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말이다.
그나 저나
오늘은
태양이 뜨려나.
태양의 빛이 그립다.
안경잡이
안경의 어떤 사나이가 있다.
그 안경속에
담겨진
그 의미는
그 어는 누구도 알수가 없다.
그로 인해서
그 사나이의 정체성은
대한 건아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 사나이는
시간이 흘러서
내게로
우리에게로
언제든지
달려갈수도
데려올수도 있는
무황천황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가치는
셈의 수로
매길수 없듯이
그 사람의 진정성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듯이
삶의 무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잴 수 있는
것일지도
세상이 그러 하듯이
세상이
그를 밀칠지라도
그 세상의 험남로를
무륵
모를지라도
그 안경잡이의 그 사나이는
고집이 무척 센
황소의 그것 마냥
이 세상에서는
알수가 없는
그 사람만의
그 혼의
가식을 저멀리 한 채로
오늘도
전진 또 전진한다.
참
아리송한 세상이다.
멀리 있더라도
가까이에서
느낄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오늘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고
인생이 그런 것임을
인생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임을
잘 알기에
삶의 척도는
자로 잴수 없음을 잘 알기에
느낌의 계절에
오늘을 맡껴본다.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가치를 찾아가면서
말이다.
요거트
달콤함의 상징이 아닌가 싶다.
그 달콤속으로
떠나보는
사살의 사랑의 미로속으로
빠져든다.
사랑의 깊이를 잘 알기에
사랑의 넒음을 너무도 느꼈기에
사랑의 가치를 재고 싶기에
사랑의 무게도 재고 싶지만
그렇게도
시간은 사랑을 잡을 수가 없음을
이제는 느꼈기에
놓음의 미덕을 알기에
놓음과 삶의 경이로움을
알아 버렸기에
오늘도
세상의 가치를 찾아간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인생살이가 있지만
그렇지만
나는
우리는
외롭지만
혼자라는 생각에
저 바다속의 잠수부의 삶의 애환을
잘 알아 버렸기에
오늘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려
아니
삶의 소중함을
되찾고
더 강하게는
쟁취하기 위해서
경이로움의 극력하고
강렬함을
그리고
노련함을 알기에
때로는
부드로움속이
외유내강의 한자 사자성어처럼
사자의 포효함속에서
비둘기의 평화의 상징처럼
닭의 새벽을 알리는
소리처럼
오늘의 경이로움을
시작한다.
그나저나
왜 그렇게도
보고 싶은 걸까.
대한민국의
가치를?
대한민국의
생각의 경이로움을?
아니면
나의 삶의
순수하고
순양의 양떼처럼
그 매질의 양각처럼
내가 과연 찾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허 와 실의
값어치를
느끼면서
삶의 경이로움속으로
요거트의 달콤함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
부끄러워라.
그렇게도
달콤함이
그리 웠던 것일까.
마치
강렬한 프렌치 키스처럼
말이다.
강렬하디 못해서
이제는
부르르 떠는 사시나무처럼
여성과 남성의
그것처럼
남성상의 상징
여성성의 본성의 본선처럼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함을
알기에
오늘을 소중히 하려 한다.
오늘은
명일의 과거이지만
금일의 존재이지만
시간은 소중하기에
시간은 화살임을
알기에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겨울의 차디 찬
마치
춤을 추다가
뜨겁고 강렬한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수의 미학처럼
오늘을 바라본다.
피곤함을 저 멀리 한 채로
말이다.
노트북의 경이로움
노트북의 컴퓨팅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하늘의 재목인
천재성은
마치
그 마술사의 환상의 쇼인양
쇼윈도의 거울속에
비춰진
여인의 그 물레방아의 속삼임처럼
속속히
겨겨히
그리고
살포시
이렇게
저렇게
마치
아무렇게나
살아 남을 수 없는
살아 갈수 도 없는
맹위의 추위도
이겨내려는
겨울의 사자왕처럼
겨울나라의 여왕벌처럼
일벌들의
여왕벌을 살리기 위한
삶의 순수성을
알아 버렸기에
내가 과연
우리가 과연
그런 기계의 미래의 도의
가식의 미소를
저멀리
버려버리고
삶의 가치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단순한
이치론적인 계산론보다는
삶의 정적인 정도를
느끼면서
새로운
가치장조를 새기면서
새롭게
이롭게
다채롭게
이색적이게
그렇게
저렇게
요렇게
요기 저기
저기 여기
참 그러나
하염없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는
웃고픈 요즘의
대한민국의 서민의 애환의 현실이구나.
언제쯤
노트북의 세상이 아닌
사람의 피부를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온기 있는
세상이 올까.
그 세상에는
내가 과연
우리라는 과정의 단계가
존재해 있을까.
믿어보자
우리의 노트북의 조국을 말이다
피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피하기 보다는
부딛혀서
넘어지더라도
울더라도
무릎이 부서지더라도
말이다.
새로운 가치를 향해서
이로운 가치를 행해 돌진하면서
이렇게도
쉽지만
알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삶의 가치를 향해서
가치론자의 가치가 아닌
운명과 학문론의 개념이 아닌
시골 아낙네의 어머니의
정의 개념으로
따스한
밥 한끼를
주려는
어는 시골 여인내의
정의 따스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오늘을.
물수건
수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땀의 의미를
알고 있으리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우리의 씩씩한
군인들의 강인함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서
자신의 목숨보다는
국가의 생을 위해서
오늘도
묵묵히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우리의 영웅인
국군의 위상이다.
또다른
수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당신의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이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 이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자식 세대들은
역시나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묵신의 도를
지키면서
마치
고향을 묵묵히 지키는
고향신의 발목인 양
저기 저 너머로
막연한
산너머가 아닌
산둥우리 우리 조상들의 넋을 기리면서
우리의
조상의 발자취를 느끼면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할 것 없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저 푸른 백마의 기세처럼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역사처럼
우리 역사의
어머니의 생명처럼
대지의 여신인
이 땅의 역사의 생명인
그 어머니의 기상처럼
오늘 하루의 시작을
기세 등등히
시작하려
한다.
마치
그 어린아이의 순망한 눈방울의
기대치처럼
마치
어른이 바라봐는
본인의 자식을 향한
어른의 아이의
눈빛을 믿으면서
그 눈빛속에 담겨진
빛이 찬란함을 느끼면서
오늘을 시작한다.
오늘을 향해서
그리고
오늘의 가치를 향해서
항로의 기선을 잡는
항로선사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향해서
그렇게도
좋아했었던
그 사람의 가치를
향해서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의 미로를 헤쳐나가면서
그리고 시작한다.
내게 주어진
삶의 가치를.
우산 받이
우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오는 거리에서
우리가
마치
생각의 관념에 잠긴 듯이
생각의 사상의 깊이에
빠져든 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아이의 순수한 눈빛인양
초등시절
그녀와의 만남인양
중학교
고등하교
대학교
대학원
이 모든 학문의
가치창조의 일상론은
마치
인형의 양면의 깔날처럼
여인상의 그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많고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가치의 연장선에서
우리내 인생살이에서
가장
소중하다 싶은
것을
찾으려 하는
것을
우리 삶의 일상은
모든이가
느끼는 것처럼
다소 이양의 거리감을 느끼더라도
다소
삶의 격함을 알게 되더라도
그 순열의 맺힘은
어는 열사의
그것처럼 인양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모든 것의 일직선상에서 있게 된다
이것이 인생의 가치이다.
마스크의 일상
요즘의 일상에서
대한민국의 상생의 걸음걸이에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과연
발견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던 것이였을까.
이 세상의 가치는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그리고
그 삶속에서
우리가
느끼고
발견해가는
것의 의미를
알고 가면서
우리 시대의
삶의 의미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기본적이고
탁상론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의
의미 발견을 찾아서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구도심의 발견을
애써
발견해 가려 한다.
그또한 삶의 이치인 것을
그렇지 아니한가.
선비의 삶은
선녀의 세상은
일치하기에
그리고
너와 나
우리와 너의 우리의 세상은
하나임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만날 수 있음을
알고 있음에
때로는
의미보다는
생각론의
다소 일상적이지만
의미의 생각에
빠지고픈
그녀와의 추억들속에서
그리고
나와 그녀의
알 수 없는
기시감과 거리감
반드시
우리는
만나게 되리라.
그날을 기원하면서
그날을 기약하면서
그 이유는 사랑의 의미를
늦은 나이에 알아버렸기에
그 근거는
진실하고 진솔된
사랑의 가치를 알아 버렸기에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의미를
우리가
찾고 가려 하는
것의 가치를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촌각을 다투려 하지만
저렇게
시간의 가치는
삶의 촌각 촌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이제와서
말허건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를 다시 한번만
만날 수 있다면
꼭 이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그때의 나의 실수를
반성한다고
그때의 나의 허망된
삶의 져버림을
너의 존재로
인해서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희망의 생명을 갖을 수가 있었다고 말이다.
이제는 그녀에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각별히
너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말이다.
남자가 무릎을 꿇을때는
한번의 족쇄인 양
한번의 인생인 양
한번의 걸안의 거지처럼 그 모습인 양
한번의 세상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이런 삶
저런 삶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우리가
저리가가 아닌
너와의
삶의 의미와
너와의
우리와의
생각과 의미론의 관념
이제와서
말하건데
그때 고마웠다고
말이다.
그리고
잊지 않는다고 말이다.
딸기밭
딸기가 먹고 싶다,
딸기의 달콤함을 알고 싶다.
저 딸기
저 딸기
우리내 딸기
우리내 삶의 애환의 딸기
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일까.
왜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삶의 의미는
무료하더라도
삶의 상식은
하나 이더라도
삶의 연속은
단 일순간 일지라도
삶의 힘듦은
하나이더라도
그렇게도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가
삶의 길을 걸을 때
우리가
느끼고
견디는 것의 건숙함을
알고 있더라도
마치
계란의 가치를
계란의 의미를
알기에
마치
미역국의 의미를 잘 알기에
그 미역 한 조각 한 조각의
가치를 알고 있으므로
이제는
너와의
우리와의
관념은 저 멀리 하고서
반드시
우리의
대한민국을 살려내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남기가 아닌
우리의
조국이 이 세상에서
건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때로는
싫더라도
가끔은
지쳐가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는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임을 잘 알기에
삶의 막중한 무게보다는
삶의 거대한 가치보다는
삶의 미약하고 미숙한 모습보다는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지는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이 모든 세상에서
갖으려 하는
것이
그 무엇이든지 간에
세상에서 가치있음을 알고 있기에
이런 저런
근심과 애수의 애환은
저 멀리 한 채로
그리고
어머니의
아버지의
삶을
기꺼이 느끼려 하는
것을
부담갖지 않으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것의
의미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어린 삶의
순가를 알기 때문에
우리가 갖으려 하는
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곧 미덕임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의 조상의 혼이자 미덕의 가치이다.
가득 담아서
담담하게
그리고
생각을 저 멀리 해버린 채로
우리가 과연
찾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가 갖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일지 언정
이 세상의 그늘은
저 멀리 한 채로
사상의 관념과
생각의 개념과
개념의 사색론 등
반복되고 그늘의 깊이 만큼이나,
세상은
어맇게도 아름답구나.
하는
삶의 가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이런
저런
삶의
느낌의
계절에 알 수 있는
것은
정의 개념아닐까.
단순한 정적인
시의 개념인
아니라
그렇다고
동적인 메밀리티적인
자동차의 개념이 아니라
생각과 인생의
이념론의 갈라침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의
가치는
단순한 것의 가치는
느낌의 연속이였음을
내가 알고 싶은
의지의 연속이였기에
내가 이루고 싶어 했었던
삶의 가름막 이였음을
그리고
그 가림막의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함을 알기에
내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알고 싶어 했었던
것은
나의
우리의
그들만의
저들만의
무지함의 개념이 아닌
살아가는 데에
인생의 의미론의 도색과
사색의 길 찾기 등 이랄까.
참
아리송 하다는 것은
이제와서
알게되는
느낌의 계절인 것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곧 삶의 연속임을
알아야 함을
마땅히 당위성을 갖고서
마땅히 지켜야 할
순망의 가족처럼
반드시
지키리라
우리의
가족을
우리의
대한민국을
반드시
눈물의 희양의 희생이 있더라도.
광주의 그늘
오늘날 살아가는
것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인간과 동물의 종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상호 간의
인식의 전환과 상호 존주의 역사 의식의 바탕으로
서로에게
더 이상의 상처의 역사를 주지 않고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더불어 역사를 맞이하는
초일의 산물의 역사를
더불어 같이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의식 관계 형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감의 교차에도
새로운 역사의
의식의 교차에도
우리 광주광역시 시민들이
마땅히 당위성을 갖고서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찾는다면
생각의 전환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자의식의 관념이 든다.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중용의 중용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자애의 빛과
자상함의 상징인
어느 가정의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산물의 눈빛
또한
사랑의 여신인 그리고
무지개의 다리를 이어주는
어머니의 자궁의 역할론
즉,
생명의 탄생을 창출케 하는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
그 자궁속에서
오늘날의
대통령
일국의
전 세계의
대통령의 역사의 파노라마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의 역사가 아닐까.
그 옛날
고지고순한
그 옛스러운 옛날 옛적에
나즈먹하니
어느
먹음즉스러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 소리 속에
밝혀진
그리고
알려진
알게 모르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서
내가 있기에
네가 존재하고
네가 살아있기에
우리가 희망의 넋을
포기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오늘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광주광역시 시민들이
지금 바로 이 순간
해야 할 것
즉
생명을 구하는 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게 하는 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서
사람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서
그 사람이 소중하다면
우리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서
우리의 사랑이 중요하다면
타인의 사랑도 소중하고 핵임을 알고서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깨닫는 그 순간에
우리
광주광역시 시민들의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일굴이 한 광역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광역시를 대표하는
광역자치단체로서의
역할을 다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지만
우리가 우리일 수도 있을 것이며
우리의 역사가
광주광역시의 역사의 한 줌의 흙의 개념이 될수도
있을 것이며
그 역사의 산증으로서의
가증의 역사가 아닌
바로
우리
광주광역시 시민들이
해낼 수 없을까.
막연한
의구심 보다는
해연과 혜량의 지혜로서의
자각과 그 자각위의 무상의 해탈이 아닌
바로의
우리 사람들의
환경미화원의 그 역할처럼
사람다운 사람을 위한
환경의 가치를 위한
즉
지구 평화와 지구의 선순환으로서의
환경 역할
이런 모든 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 지구의
우리 광주의
우리 대한민국의
우리 한국인의
우리 아버지의
우리 어머니의
우리 누님의
우리 형님의
우리 조카의
우리 형수님의
우리 작은 아버지의
우리 숙모의
우리 작은 어머니의
우리 외삼촌의
짧게는 가족의 끈끈한 역사의 정을
길게는 국가의 피튀기는 마치
6.25 혈육상잔의 전쟁의 피튀김처럼
그렇게
길고도 긴
미지의
그리고 알 수 없는
역사의 터널을 지나고서
다시 해낼 수 있다는
저 한국의 역사의 일부분인
1988년 올림픽
88 올림픽
올림픽의 횃불의 상징으로서의
긴긴 삶의
개개인의
가정의
사화의
문화의
국가의
세계의
이 모든 조화의 산물의 역사를
우리
조상들은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이미 언어, 즉
구두로서 몸의 언어를
발현하고
그렇게
시작되는
연인들의 볼의 복숭아의 그것 인양
바라볼 수 있는
것의
아닐까!
5.18 그날의 의식
1980년 5.18 그날의 역사의
피눈물의 역사를
아는가.
역사의 산증인으로의
5.18의 숨겨져 있는
계엄군의 피의 희생자의 눈물의 현장속으로
빠져본적이 있는가.
그렇게도
알고 싶어 했었던
그렇게도
얻고 싶어 했었던
우리의 어머니의 자식들의 희생.
얼마 지나
않아서
우리 1980년 05월 18일의 그 역사를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인지해야 하는가.
막연한 역사 의식보다는
어뚱하고
막둥이의 그런 순망한 아양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막고 싶어 했던
그 당시
그 현장에서의
어머니의 피 눈물의 자손들
그런
역사의 산증인으로서의
그 현장에서의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님의
잃어버린
피의 가족들
그렇게도
찾고 싶어 했던
미싱의 시간들
찾고 싶어서
그저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도
먼 시간이 흘러 흘러도
찾음에
마냥
찾고 싶음에
그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며
만나게 되리라 하는
미지의 희망을 잡고서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아이를 살려 내려는
아버지의
어머니의
눈물의 구출 작전인양
그 당시
그 현장에서
숨겨 돌아가신
전쟁터에서 전사하신 순국 선열의 그것의 혼인양
어머니의
자손의 혼을 향한 열정
어머니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뜨거운 눈물의 현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오늘날
우리 광주광역시 5.18의 역사적 세대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마음의 상처를 준 저 군부세력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용감하게
대적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미지의 허상의 세상을 향한
외침보다는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서
그들의 혼의 태움으로 인해서
생각을 버리고
행동을 멈추고
사상의 중심을 잃지 않고
그저 묵묵히
오늘 하루를 나아가는 것이
다 일뿐일 것이다.
복수의 그 것 인양
나의 상처의
우리의 상처의
우리 광주광역시의 상처의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의 상처의
미처 다
치우지 못하고
미처 다
해우지 못한채로
남견진 우리의
삶의 상처들
그 상처들이 아물기도 전에
이미
지워져 버린
지우개의 그것 인양
마음에서의 그것 인양
가슴에서의 그것 인양
사랑에서의 그것 인양
산골 으슥의 한 정처에서의 메아리의 외침인양
희색다량한 삶의 끝에서의 외로운 늑대의 도망침 인양
새로운 것에 대한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계속되는 것의
미련함 속의
생각의 저울질의 그것인양
우리 5.18의 역사는 피의 눈물의 역사이다.
그 피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 상처는
개인의 상처가 아니다.
가족의 상처가 아니다.
사회의 상처가 아니다.
국가의 상처가 아니다.
세계의 상처가 아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니다.
생각의 상처가 아니다.
행동의 상처가 아니다.
가식의 상처가 아니다.
느낌의 상처가 아니다.
길거리 거지의 상처가 아니다.
일국의 대통령의 민초를 대하는 상처인 것이다.
그 대통령의 민심을 져버리는
행태와 행실의 부도덕함속에서
우리 민중들이
궐기의 행동을 보여줘야한 했었던
피의 진동인 것이다.
그런 행동의 잔재들은
아직도 존재한다.
미지의 역사가 아닌
삶의 산 역사속에서
아직까지도 발견된다.
계속되는 5.18의 역사를 그리워 하면서.
-소담스퀘어의 하룻밤의 정취-
원하는 것의
성취감과 정취의 느낌
너에게는 없는 것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것과의
세상사의 공유감
너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거리감의
기시감에 따른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들
그 속에서는
너와 내가
마치
저 혜안의 길을 걷는 듯한
작은 기시감의 반복감
나는
그대로 가야할까
아니면
존재의 의무를
져버려야 할까
그 대답은
너만이 알고 있으니
-핸드폰 너는 무엇이냐-
저만치
붙어있는
두 핸드폰의 모양새의 생김새
나는
너희 둘을 볼때면
작은
위안과 안도감을 느끼게 될지니
왜 너는
붉은색이니
왜 너는
검정색
알수가 없구나
두 색깔의 차이는
무엇인고
그대들의 존재로 인해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나의 만족감을 느끼게 되고
너의 그 거리에
있을 때 즈음엔
너의 그것을
먹고 싶어
너의 먹거리를
나와 우리의 이웃들과
나누고 싶어
나는 너를 공유하고
그 공유의 대상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야
핸드폰아
두 핸드폰아
내게 있어줘서
고맙구나
영원히
나에게로
있어주무라.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정처없이
떠도는
작은 객량의 객원들의 교수님과
어찌보면
너의 가치를 잃어버린채로
네게는
없었을
나에게로
가고 있을
저만치의 거리감을
저멀리 한 채로
그 방향의 설정을 향해서
그 설정의 깊이를
정하기 위해서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고
너의 위치를
알기위해서
오늘도
이김없이
컴퓨터 서적을
뒤지고 있을테지
해킹을 하기위해서
너의 위치를 위해서
왜 알고 싶은걸까
네가 있는 곳을
네가 원하는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이렇게
방황하는 걸까
30년
40년
50년
60년
70년
80년
그 긴긴 세월을
너없이
지내기가
두려운 걸까
아직도
알수 없을
너에게로 가는 길은
멀기만
느껴지는 구나
너는
도대체
왜 나를
찾지
않는 거니
왜
왜
왜
왜
너를 사랑한 나머지
나의 길을
잃어 버린
내가
-너에게로 가는 길-
참
행복했었다.
그때 그 시절의
가치를
알고 나니
말이다.
Don’t Cry For me.
그렇게도
너를 울리고
나니
그 시절의
내가
참 원망스럽구나.
그때 그 도서관에서
너의 진로를
알지 못한채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구나
이제는
너에게
갈수는 없지만
너의 길을
가는
네가
나의 길을
가는
내가
정말
아쉽구나
너의 길을
알고 싶은
내가
너의 존재 그 자체가
나의 희망이였음을
그때는
그것을 몰랐구나
나의 실수로 인해서
나의 한의 실수로 인해서
너를 놓쳐 버렸구나
미안해
그리고
여전히
사랑해
-참, 아쉽구나-
보이즈
걸즈
그 작은 그리고
거대한
괴물의 왠수가
되어버린
너의 그 가치를
잊지 못하여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나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너를
잊지 못하는 구나
하지만
나에게는
작은 여정의 길이
보여지는 구나
너에게
언젠가
자랑스럽게
나타날 수 있을
그때가 오기를
10년
20년이
걸릴지라도
네가 그리괴 내가
살아있다면
그 어떤
천진난만한
순수한
망구한
너구리의 그 웃임인양
다람쥐의 챗바퀴처럼
루틴하고
반복된
일상을 극복하면서
너의 찾을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행동으로
실행하겠다
나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Boys Be Ambitious.
그리고
거대의 괴물이 될지언정
나는
그 괴물의 여정을
걸어갈 것이니
너를 존재가
나의 희망이 되어버린채로
-너의 길과 나의 아침-
나른한
아침의
길과
하품 섞인
길가에서
나만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길속에서
함께
거닐었었던
그 시절
그 영화 관람의
정취감의 느낌의 감정들
너를
보고 싶어
하지만
볼수 없으니
내가 나를 인정해야겠지
Speechless.
무언의 그녀와
용감 다쌍했던
그 군인 남자와의
거리감 속에서
나는
반드시
승리하겠다
너의
찾기 위해서
반드기
그 길을 갈것이니
나는
실행의 그 단계에 있으니
나의 희망을
준
너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행복의 길-
행복은
저만치의
거리감에
있어서
나는
그 길을
알수가 없을지언정
나는
너에게로
갈수 없는
행복의 길과
그 길의
괴리감에
주저하고 있으니
알수가 없구나
왜
잊지 못하는 것일까
행복의 길은
나의
길을 함께 거니는
그 길의 동행의 착함일까
나는
너로 인해
너의 존재했을 그 기시감으로
인해서
나의
행복감을
너의
행복의 충족함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 리디미컬한
그 감정의
느끼고 싶어서
그저 알고 싶어서
그저 함께 하고 싶어서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음을
인지 하면서
나는
그 길가에서
너의 손을
놓았던
그때의 그 2호선 지하철을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구나
2호선은
지금도
다니는 것일까
너의
2호선의
나의
2호선이
일치하는 순간이
올때면
나는 얼마나
좋을까
행복할까
그 행복의 시작과 끝은
과연
시작될까
?
-나만의 성취감-
도전하며
도전한후
그 결과의 최후의
승자는
나의 그녀가
될까
아니면
너의 그녀가 될까
그 결과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군바리의 정신과
일반 직업군인의 맨정신의
대결일까
과연
기대 되는 구나
과연
질문의 해답은
하늘만이
아니
저 하늘의
멍개구름만이
알게 되겠지
나는
잊지 않으리
대한민국의 양면의 칼날처럼
너의
길과
내가
가는
거리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낙옆의 짐을
저멀리 한 채로
나는
나아간다.
너에게로
한줌의 잿빛 죄의 값은
22년간
받았으니
나머지
절반의
인생은
네가
채워줘야 하지 않겠니
후
하
안녕
후
하
또 보게 될거야
하
하
하
하면서
웃게 될날을 고대하면서
-월요일, 그날은-
그날의 향수의 느낌과
갈대의 순망의 갈망이란
너란
존재가 있었기에
나의 네가
이렇게도 힘이 되었다네
감사하고
너의 잘못과
나의 반성의 합침으로
너의 미래의 행복을 바라며
나의 너를 향한 과거의 믿음은
이제는
저 멀리
가버린 바다의 심혜의 심수를
기약하며
너를 이제는
잊고 싶어지네
아니
잊으려 하네
감사하네
감사했었네
너의 친구이자
너의 마지막 그리고
너의 희망의 등불이
-다가오는 화요일의 생기-
화요일에는
나의 반기의 생리듬이 부활할지니
그날의 그 기분이란
항상
있어 왔던
그림자 역할의 너의 모습 이였으니
참 반갑구나
참 너로 인해서
기쁨의 안도와
희망의 기억사의 안식이였구나
감사하도다
나의 기쁨의 사랑이여
나의 사랑의 화요일이여
반드시
또한 그렇게
이렇게도
바래왔지만
너의 행복은
이제는 놓아주려 하네
너의 짝사랑이
너를 너무도
그리워 했더랬지만
이제는
마음의 지침이
놓아주려 하네
-작은 외침-
이제는
알고 지내는 작은 외침의 고상의 넋을
저제는
네가 있을 그 자리에 서서
나에겐
또 하나의 작은 외침을 잊으려 하네
너에겐
또 하나의
작은 미소의 흐름의 끝이 되려나
우리에겐
작은 마디 마디에
그 속의 빛은 어느 덧
그 길을 잃어 버렸으니
언젠가
다시 흐느껴 울
다시 만나게 될
다시 후연의 길을 함께 걷게 될
다시
다시
너의 작은 외침을 들어 보려 한다
-혹여나 올까요-
언제부터인가
작은 희망의 외침이 내 귓가에
들려 왔었네
그 외침의 메아리는
우리의 작고도 큰 연인들의 달콤한
그것 마냥
고독의 마지노선처럼
고연의 작은 그러나
그렇게도 미연의 숙연의 그림자 인양
너에게로의 그 길은 너무도
멀고도 험로의 길이 였으니
너는
나는
우리의 그 운명의 쇠사슬의 고리의 연장선은
너에게로
가고 싶은
너의 그 깊은 곳으로 빠지고픈
나의 어리석은 몽환의 자조섞인 어지러움 인양
나의 그 향기에 취한 나머지
그 속에서 발견되고 발견할 수 있는
너와 나와의 그 침의 외침이리라
그 새하얀 천사의 심장의 도려냄을 견뎌내듯이
이제는
그 종의 끝을 봐야겠으니
너의 우리의 우리 내세의
희망보다는 자조의 암울 덩어리를
과감하게 던져버리리라
-저녁의 웃음-
조식의 석식의 그 그림자의 식의 달콤함들
아침 이후
천천히 오게 되는
우리내 인생살이들
그 곳에는
저 만치
갈 곳을 잃어 버린채
한쌍의 두루마기의 새의 짝짓기의 쌕쌕거림 소리마냥
우리내 인생살이란
헤어지고
만남의 해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그 길에는
우리가 걸어가는 그 마음속 속내에는
어느 덧
세상살의 깊디 깊은
쓴맛의 총알탄을 맛봤으니
너를 발견하더라도
나의 너를 향한 자취를 잊지 않으리라
-너와의 황홀경-
아
아
아
이런 곡소리의 애환과 세상의 큼의 성장의 소리들
왠지 모를
우리의 네가
너의 우리에겐
세상의 깊은
연인들의 그 깊은 샘물의 용솟음의 소리마냥
헥헥 거리며
헉헉 거리며
그 소리에 취해
그 소리의 미지의 세계로의
그 소리가 내는 작지만 애처롭고 애증의
폭포의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그 액인양
그 속으로 깊게 빠져들어
흐믈 흐믈
유들유들한 액의 춤인양
그 액은 서서히
스며든다
인간의
여인의
남정내의 풋풋하고 고약스런
냄새의 잔잔함을 풍기며
오늘 밤도
그 액의 황홀경에 빠져 버렸으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희상-
옛날 옛적의
두 아버지와 두 어머니의
두쌍의 부부가 있었으니
그 부부들의 생의 환의 길의 인도란
그 부부들이 갖고 태어난
수수하고 순수함의 정적 그리고
고달픔의 세상을 향한
세상사의 길의 전진 또 전진속에서
늦었더라도
아니
조금은 뒤처지더라도
그 남자의 그 아내
저 아내의 저 남자의
사랑의 혼을 기억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그 두 부부들의 애환의 삶의 고적한 흔적들은
서서히
세월의 유구함에
두 무릅을 꿇고서
세상의 하늘을 향해 외친다
그 길이 바로
그 두 부부들의
그 두 부부들이 유일무이하게
세상사의 고난의 핏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그 씨앗의 재탄생의 생로의 길이 였음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에
두 부부들의 생의 이별과
죽음과 재환생의 생의 이어짐은
두 부부들이 가슴의 안고 살아가야 함을
인각의 부처의 상의 눈물을 훔치듯이
부부들의 이별을 기리며
그리고 희상의 넋을 애연하면서
-ACC 에서의 추억-
어느때 부터인가
알게 된
작은 추억의 그 길속에서
느낌의 길가에서
펼쳐지는
나의 추억의 ACC
작지만 그리고 미결의 소소함이
묻어 놨던
나의 추억의 ACC
그 길속에는
나의 추억과 아픔의 순간들이 있었으니
그래도
소소하더라도
작더라도
나의 동료들과의 애잔함의
슬프디 슬픈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준
나의
우리의
우리 대한민국 광주의 ACC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겠습니다.
-작은 떨림-
앳된 작은 순간의 떨림
그 안의 펼쳐지는
영원의 영면의 숨결의
이파랜
작지만 강한 숨결의 떠올림
그리고
그러나
그렇지만
나의 행복의 매순간의 결정체는
바로
그렇게라도
잡고 싶어 했던
나의 희망의 절망의 손짓 이였음을
나는 인정하려 하네
그 숨결의 인정은
바로
나의 생명의 연장선이 이였으니
그러한
나의 작은 사랑의 홀로된 외침은
나의
행복의
우리의
작은 애잔함의 연속된 함정의
덫인양
그래도
그 행복과 작은 순간의
어둠의 덩어리들은
매쓰꺼운
작고도 커다란
행복을 줄 수 있음을
우리는
지각하고 각지해야 함을
알겠는가
나의 조국의 영혼의 빛이여
알았는가
나의 피눈물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자손들이여
-미소의 얼굴-
용안의 두 남녀의 행복감에 찬
작은 그리고 그을림에
어느덧
지쳐버린
나의 연인들이여
우리의
그 그물속에
빠져버린채로
헤어나오지 못한채로
그저
작은 외딴섬의 그 숨결의 비창의 비상의 느낌처럼
이제는
작더라도
갖지 못하더라도
함께 함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전향의 전진을 위해서
나아가려 하네
나의 피의 영혼들이여
-구원의 손길-
저 멀리 쏟아져 있는
구원의 새싹의 외침
이제는
나의 외로움도
너의 그 깊어져 가는 외침의 한 손길도 P>
나의 길가에
숨겨져 있던
작은 메아리의 순간 순간의
영명과 영면 그리고 순연의 손길들 조차도
저 멀리
가버린채로
나의 홀로됨을 서글퍼 하지 않고서
나의 홀로서기를 머지 않아
나의 저 넓은 대양의 미지의 길을 찾기 위해서
나의 한줌
희연의 희망을 길을 펼쳐 내리라
나의 희망 그 자체로서도
그 각결의 의미 부여가 될지니
그 손안의 작은 떨림은
바로
우리의
너와의 작은 물결의 반짝거림 일지니
나는
우리는
그렇게라도
반드시 만나게 되리라
그 길이 비록
멀게만 느껴지더라도
나는
우리는
하나됨의 그 길속의
영혼의 새로운 만남이 펼쳐질지니
-새싹의 돋음-
봄의 완연함과
여름의 강렬함의 습함의 공기속 외침
가을의 추억의 새록새록한 작은 물결의 비아냥거림
겨울의 새로운 추억을 되살려 주는 작은 행복의 기시감의 외침
왠지
모를
작고도 새롭고도
우리내 인생살의 고달픔의 외침들
희망의 길가에는
작은 외침과
큰 메아리의 반향의 되돌림표처럼
행복의 작고도 두근 두근 거림의
계단의 폭거의 폭정의 정치적인 순향 돛단배의 미숙함
마디 마디의
거목의 나이테의 숨결인양
나는
저 멀리 대양의 미지의 순 돛단배의 방향 상실을
잊어버린채
행복의
거리의 가을에 펼쳐진
우리의 가을의
너와의 가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작은 순망울의 눈방을 쳐 내리라
나의 행복을 갖기 위해서
우리의 그 만남의 위해서
-너의 길에 서서-
나는 선다
우리는 가려 한다
우리내 인생살이의 거리감은
하나 둘씩의
작은 물결과
큰 도화지의
어린아의 순수함이 묻어난채로
어른들과 아이들의 동심의 두 눈동자의
엉글 얼글 거림의 반짝 반짝거림처럼
빛의 환경의
저 떠오르는 태양의 빛처럼
우리가 서야 할 길
네가
내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
이제는
미지의 두려움을 나의 우리의
두 등의
무거운 점을 버려두고
함께라는
작지만 강한
저 음악소리의 외침인양
우리는 바로
이때다 싶어서
저때다 싶어서
축구의 골이다
야
함성이다
외치네
외치고 외치네
그 승리의 한 길
그 한길의 승리의 또 다른
같지만 다른 듯한
행로의 길을 맞이하면서
-The Pain-
작은 떨림의
고통의 숨결의 속삭임
그 속에는
그녀와의 따뜻스레한
입맞춤이 있었지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2027년
2028년
2029년
2030년
2031년
2032년
그 날이 외게 된다면
나의 그녀와의 약속은
이루워 지겠지
한 순간의 나의 실수로 인해
나의 그녀는
떠났지만
그래도
저래도
기다리려네
나의 그녀의 눈물을 위해서
나의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그녀의 작은 느낌을 위해서
나의 그녀의 아이를 위해서
그녀를 사랑하므로
나의 그녀를
-오똑똑이의 외침-
우두둑
우두둑
거리는 작은 길가의
오뚜기의 홀로섬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지만
나의
우리의 자랑스런
조국의 미래의 향배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의
우리의
그 길을 위한
작지만
크지 않더라도
나의 마지막 조국을 향한
외침을 위해서
나는
오늘 이 순간에도
필승을 위해서
사라지지 않고서
전진하려 한다.
그 길이 외롭고 고독의 연장선 일지라도
나의 목표를 향해서
고독의 길일지라도
내가 정한 나의 운명은
내가 거스리지 않으리라
-마우스의 일탈-
컴퓨터의 컴퓨팅의 외로운 계단의 단계의 걸으마
그 길에는
한쪽 두쪽의
저 하늘을 향한
음악 선율의
마치
음식의 기름을 부어주듯이
그때까지의
달콤 싹사름한
행복의 길을 위해서
어머니의
따뜻한 음식의 녹아내림
아버지의
강인하고 남을 가장으로서의 가정을 위한
떨림의 용기의 외침
그 마우스의 동작
하나 하나는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우리 인간들이
만회하기 위해
계산의 계산기가 아닌
우
아
이
위
여
야
이처럼
한글의 모음자리처럼
한글의 자음을 위한 모음의 위치 선정처럼
하나 둘씩
이어져 가는 듯한
그러하므로
그 목표의 끝을 위한
여름 외할머니의 손주를 위한
옥수수의 따뜻함처럼
우리내
우리 대한민국의 가족애를
위한
작은 두 왼쪽 오른쪽의
마우스의 한 동작 두 동작의 의미 그자체는
바로
가족의 사랑이리라
사랑
얼씨구나
듣기 좋구나
사랑이리라.
-습관의 습탈-
사랑의 습관의 습탈의 관습인양
사랑의 버릇인양
사랑의 느낌인양
사랑의 버림받음 인양
사랑의 작은 고요함의 외침인양
그리고
그 안에는
없어져는 안될
그리고
그 향기의 사랑의 향기의
그 향내의 그 여인의 숨겨져 있는
숨결의 목숨의 연명의 느낌을 지우기 위한
우리가
우리 세대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나아가야 할
그 길은
바로
상대방의 목소를 들어주는 작은 경청의 자세일지니
아름다움의 저변 목소리에는
바로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재벌들의
조화의 목소리가
필요함이니
우리
우리의 주변인들과의
묵과의 묵시의 경청이 아닌
생명을 존중하는 그리고
생명의 타향살이의 벗어남이 아닌
바로 우리의
불석신명과 자행화타
마지막으로
앵매도리의 서로 서로의 어울림 아닐까
하는
술 한잔
커피 한잔
녹아내리는
그 느낌처럼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대한의 건아의 외침을 연상하면서
우리가
우리 대한민국인들이
우뚝 서
우뚝 일어나
우뚝 우뚝
Beautiful Mind
Beautiful Soul
Beautiful attittude
Beautiful consiousness
Beautiful egoism
Beautiful fighting
이 모든 것은
바로 사랑의 완성의 마침표를 찍기위한
우리의 사랑이리라
사랑이리라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믿음의 사랑이리라
-강렬함의 위하여-
강하디 강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의 결합의 순명체의 생명력
또한
형님과 누님 그리고 막둥이의
사랑을 향한
마지막으로
강인하다 못해
그저
묵묵히 묵상의 묵념을 지닌채로
Keep The Faith.
Keep The Line.
Keep Up With You.
Keep Searching.
Keep Yours_&_End_Sing_A_Song
모든이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이의
시도의 시향의 시속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 시의 향수의
바로 그 향수의 향배를 느끼기 위해서
바로 행복의 떨림을 느끼기 위해서
바로 우리의 젊은 시절
바로 우리의 유난의 유아의 순진무구함을 위해서
바로 우리 조상 세대들의 유구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만나야 함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언제가는
반드시 초용의 처가살이의
반드시 두 용안의 만남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랑의 위해서
반드시 행심의 행복의 시를 두 사람이 이루워 내기 위해서
This is not a love song.
This is not a sad and runner game.
This is not a swallow and dilicious food likely.
사랑의 정점이란
바로
바로
바로
바로
바로
너의 느낌을 느끼는 것 그 자체임을
나는
이제서야
알아버렸네
너의 얼굴의 빛을 느끼고 싶어서
그게 나의 생명의
그 끝일 지언정
단 한번 만이라도
그 얼굴의 빛을 느끼고 싶어서
그저 느끼고
싶어서
사랑하니까
목요일의 어둠 그리고 떠오름에 대하여
상념에 잠긴 목요일의 어둠
그리고 떠오름에 대하여
나는 상상하네
내포된 나와 너의 일상에 대하여
이제와 오늘과 내일
너에게로 다시 한걸음 두걸음
그 피어오르는
새싹의 뭉게구름을
나는 바라보네
왜 이리도 늦었니
이제는 내 품에서 쉬고 가려므나
나의 아가야
나의 어머니의 웃음아
나의 아버지의 땀방울아
나의 조국의 피눈물아
이제는 내품에서쉬고 가려무나
목요일의 어둠 그리고 떠오름에 대하여
나는 상상하네 나는 생각하네
생각하므로 나는 존재하네
나의 꿈
나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 보신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희망이 무엇인지
물어 보신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사랑이란 무엇인지
물어 보신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때때로
하무한 꿈이라고
생각 한답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절망 한답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사랑할 수 없답니다
나는 천국을 꿈 꿉니다
나는 파라다이스를 희망합니다
나는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 사랑을 꿈꿉니다
영원한 신의 사랑을
오후의 일념
생각해 보면
많은 일상의
소소한 날들의 연속이다
그래서인지
더 알고 싶기도 한
그 남자 그 여자 그 아이 그 노인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우리들의 세계속의
다반사의 일상의 연속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깨닫아야 할 것인가
결론은 하나이다
그것은 약속임을
그 약속은 영원함을
영원한 약속은
바로 언약임을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인연이 있음을
토요일, 신호등 앞에 멈추어 서서
상념에 사로 잡혀
너에게로 가는 길
왜 그때 붙잡지 못했을까
왜 그 때 그런 실수를 했을까
내 마음의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가네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랑하던 그 사람에게
나의 사람아 보고 싶어라
내 사랑아 얼마나 외로울까
서러워 말아라
이 세상 끝나는 날
우리 다시 만나리니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후회는 막차를 타고 떠난다
일상에 젖어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명암을 찾아 떠난다
그 날은 왜 또
그렇게 지나 갔을까
후회의 막차에도
떠나가는 그 사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다
그 날의 그 실수는
이제는 돌이켜 봐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는 막차를 타고 떠난다
떠나고 돌아오지 마라
후회한들 소용 없으니
나의 희망은 언제나
첫차를 타고 내일을 향해 간다
날마다 좋은 날을 내가 만든다
빛의 그날
하루가 시작됐다 또 하루가 모든 이의 시작과 끝의 하루가 어떤 이는 오늘의 아침을 반기며
시작하는 이가 있음에 또한 어떤 이는 고된 일의 일과를 마치며 귀가하는 아침일 수도 있을 시작의 아침이다
누군가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고 하였다 그 문언의 심중에는 미래에 대한 괄목할만한 결과가 없을지언정
오늘을 지냄에 있어서 현실에 벗어난 개념과 진리는 의미없음을 아마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는 방식이 서로가 다를 뿐 각자가 추구하는 것은 같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감에 그 무언의 의미보다는 하루의 현실에 충만한 만족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에 족할 뿐 아닐 것인가
그저 그 족함에 오늘을 시작한다 하루를
유림
몇 해 전부터 아리송한 기억과 추억의 한 빛깔처럼 조카 유림이의 어렸을 적 모습이 떠오른다
그저 달달하기도 처연의 빗장의 우수함처럼 그저 순하디 순한 금붕어의 순수한 눈망울을 간직한 채
지금은 어엿한 자기만의 보금자리에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 조카 유림이
많이 울기도 그저 떼쓰기도 했던 아주 어린 시절 그래도 나의 유일한 조카이기에
내 핏줄의 혈연의 유일무이한 정적인 존재이기에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기에
나에 대한 믿음과 우리 가족의 대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저 비둘기의 평화로움과 그저 새의 완연한 자유로움을 맛보며 그러나 조금은
적정선의 정도를 유지하며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앞선다
우리 유림이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멀리서 그저 조금은 가까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묵묵히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하는 것일 뿐 그 이상과 그 이하의 관심과 배려는 나의 영역이 아니리라.
때론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가 막히는 하수도의 그것인 양 풀리지 않는 미로에 사로잡힐지라도
우리 가족의 그동안의 무난함으로 극복했던 많은 일들이 그것 우리 가족의 힘을 증명하기에
오늘도 함께 지켜보며 고락을 함께한다
나의 가족과 나의 우리의 유림이를 사랑하기에 마음의 정적인 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저 순수함으로 사랑하기에
비오는 거리
살며시 그리고 살포시
다가오는 그대
언젠가의 그때를 기약하며
오늘 이 자리에 서서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미안했다고
그대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대를 어루만져 주지 못해서
그대의 미래를 믿어주지 못해서
그대의 약한 모습에 실망해서
미안했다고 말을 건넨다
그대를 이해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 달라고
생각과 체념 그리고 포기
이 모든 것들이
그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나약함과 미숙함
때문이란것을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기억하려 한다
그대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을
비오는 저녁에
지나간 행복
지금 떠오르는 지나간 세월의 행복감.
참 아련한 기억이다.
그때는 뭐가 그리도 당당했을까.
뭐가 그리도 행복했을까.
뭐가 그리도 천진난만 했을까.
알수가 없는 지금이다.
10대, 20대, 30대를 걲으면서.
느끼게 되는 작은 행복감.
10대의 청순함과 질풍노도의 시기마냥
그저 앞으로의 미래가 그립기만 했던 시절.
20대의 막연했던 시절의 행복감.
뭐가 그리도 답답하고 막연하게 미래를 생각하는
시절이였던지.
30대의 지금은.
지나간 과거의 행복을 마냥 그리워하는 요즘.
그래도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뿐.
과거에 짓밟혀 지금의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망칠수는 없는 지금의 요즘.
생각과 행동이 중요한 이때다.
막연히 생각에만 그쳤던 10대, 20대는
이제 지나간듯 하다.
지금은 생각을 했으면 실행에 옮기는
그리고 옮겨야만 하는 당위적 30대이다.
그리고 허황된 생각과 행동은 이제 금물인듯 하다.
실행가능하고 나만을 위한 행복이 아닌.
나를 위해 그동안 희생의 세월을 겪어야만
했던 나의 가족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야가야 할때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지만
가족이 있기에
작금의 내가 있는듯 하다.
그동안 너무도 가족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깨울칠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지금이라면
후회되지 않을 지금이라면
한걸음 한걸음 단계를 밟아서
가족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나를 완성하려 한다.
지나간 세월의 행복에
더이상 미련를 갖지 않으려 한다.
과거는 과거일뿐 되돌리수 없으니.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이가
좀더 발전된 나를 발견하는 그때를
기약하며
오늘도 이렇게 나아간다.
나를 좋아했던 나를 싫어했던 나를 미워했던
나를 증오했던 나를 보고싶어 했던 나를 그리워했던
그 모든이가 지금 이 순간
너무도 보고 싶지만
그리고 너무도 미안했다고 감사했다고 나를 용서하라고
그들에게 전하고 싶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질수 있도록
지금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기원한다.
꼭 만나서 그들과 대면해야만
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내가 그들을 생각한다면
그들도 나를 생각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행복과
나와 나의 가족의 행복이
일치하듯이
지금도 외치고 싶다.
그들을 사랑한다고
그들을 위해 내일을 향해 걸어간다고
그리고
그들에거 말하고 싶다.
고마웠다고
나를 위해줘서.